물론 올해의 한반도를 둘러싼 경제환경은 120년 전의 을미년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지난해만 해도 한국은 캐나다·중국·뉴질랜드·베트남 등 4개국과 자유무역협정(FTA)협상을 타결했다. 현재까지 한국과 FTA를 체결한 나라는 미국, 유럽연합(EU) 등 무려 52개국이나 된다. 세계 국내총생산(GDP)을 활용하는 소위 ‘경제영토’라는 개념을 적용한다면 2013년 기준으로 세계의 2%도 안 되는 한국이 세계의 4분의 3에 가까운 73.5%를 ‘경제 영토’로 확보한 것이다. 문을 닫아걸었던 1895년 을미년과 비교하면 격세지감도 이만저만한 수준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를 둘러싼 경제환경은 그때처럼 매우 불투명하며 사방에 지뢰밭이라고 할 정도로 어렵다. 이제까지 겪어보지 못했던 저성장, 저물가, 엔저(엔화약세)라는 ‘신 3저(低)현상’이 본격화되고 있다. 내수가 침체돼 저성장이 고착화됐고, 물가도 지난해 12월까지 25개월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연 2%를 밑돌고 있다. 게다가 뻔뻔한 일본은 인근 궁핍화 정책으로 저만 살겠다고 엔저를 심화시키며 한국을 수출전선과 자본재시장에서 곤궁에 몰아넣고 있다.
이인실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경제학 |
결국 120년과는 정반대로 개방을 택한 우리 경제는 해외요인에 의해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 하지만 글로벌 시장이 바로 한국의 내수 시장이란 정신을 가지고 그 돌파구도 해외에서 찾아야 한다. 희망이 보이는 것은 감소하던 중소·중견기업의 수출이 2013년부터는 증가세로 반전했으며, 새로운 분야와 판로를 개척해나가며 대기업보다 높은 수출 증가율을 보이고 있고 최근 들어서는 우리 자본의 해외진출도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을미년은 광복 70주년과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다. 역사가 말해주듯 을미사변의 치욕을 걷어내는 한·일 관계의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가기 위해서는 또 다른 경제도약을 이뤄내야 한다. 불확실성 속에 숨겨진 성장기회를 모색하는 역발상으로 우리 경제는 과거 총체적 난국을 많은 개도국이 부러워하는 도약의 기회로 만든 경험이 있다. 우리 민족의 숙원인 통일도 국제정세와 나라 간 역학구도와 직결돼 있다. 새해에는 불확실성의 먹구름을 걷어내고 경제시스템을 혁신해 한국경제가 해외로 더 뻗어나가는 축복의 을미년이 돼야 한다.
이인실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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