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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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진의청심청담] 새해 ‘천부경 큰잔치’, 한국문화 복권의 징조

한국문화 지킴이 1000여명 모여
역사·주체의식 다질 새 토대 마련
기독교 성경이나 불경은 웬만한 사람이면 다 알아도 우리민족 전래의 최고(最古)의 경전인 ‘천부경(天符經)’을 모르는 사람이 상당히 많을 것이다. 성경이나 불경의 한 구절쯤은 줄줄 외우고 사는 것이 우리들의 일상이지만 천부경은 아직 낯설다. 천부경은 우리 조상들이 섬기고 생활화한 경전이면서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경전이다. 그 경전의 글자 수도 불경의 팔만대장경이나 기독교 성경 66권과는 다르게 달랑 81자에 불과하다. 문자도 제대로 사용하지 않았고, 책도 없었고, 인쇄술도 발달되지 않았던 태곳적에 이 경전은 사람들이 외우기 좋게 81자 속에 모든 진리를 축약해 놓았다.

천부경은 처음엔 녹도문(鹿圖文·사슴 발자국을 따서 지은 문자)으로 전해오다가 통일신라시대의 선사(仙士) 고운 최치원 선생이 한자로 옮겨놓은 것이 오늘에 전한다. 물론 옛글자의 뜻과 한자에 두루 능통했던 최치원의 수준에서 번역되었을 것이다.

박정진 객원논설위원·문화평론가
아무튼 오늘날 한국 경제가 발전하고 한국 문화의 혼이 되살아나니까 ‘천부경 큰잔치’라는 것도 생기고 올해로 2회째를 맞이했다. 제1회 세계천부경 큰잔치는 세계천부경 협회(회장 조성교) 주최로 2013년 11월 11일(음력) 대전에서 열렸으며, 당시 ‘세계천부경의 날’이 선포되었다.

세계천부경협회의 이름으로 된 선포문의 내용을 보면 의미심장하다. “천부경은 일만여 년 전부터 내려오는 한민족의 경(經)이요, 인류의 경(經)입니다. 오늘날 21세기 새로운 신인류의 정신문명시대를 열어가면서 비로소 천부경의 깃발을 힘차게 들 때가 도래하였습니다. 이에 매년 음력 11월 11일을 세계천부경의 날로 선포합니다.” 세계천부경협회는 당시 선포를 하면서 서력기원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잃어버렸던 연호를 죄다 명기하였는데, 예컨대 환기 9212년, 개천 5911년, 단기 4346년, 불기 2557년을 함께 병기하여 우리의 역사의식과 주체의식을 간단한 방법으로 새롭게 일깨웠다.

올해 천부경 큰잔치는 사단법인 한배달(대표 박정학)과 공동주최로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을 기리는 문화의 전당인 세종문화회관에서 개최됨으로써 제대로 한국문화의 중심에 진출한 셈이다. 천부경 속에 한글창제의 원리가 다 숨어 있다는 주장도 있으니 천부경은 실로 수천 년 만에 제자리로 회향한 셈이다. 천부경, 한글의 시대가 오고 있다. 전국에서 모여든 한국문화 지킴이들 1000여 명은 세종홀을 가득 메우고 천부경을 봉독하고 노래하고 그 의미를 되새기고, 나중에는 참가자 전원이 손에 손을 잡고 강강술래를 하면서 폐막을 했다. 이날 천부경 노래(가수 홍인)와 판소리(신이나 퓨전국악단장), 율려 춤, 천부의식(이귀선 어울림문화예술움 대표) 등 천부경을 주제로 다채로운 문화예술행사가 벌어져 우리마당, 한마당을 이루었다.

본래 천부경 큰잔치는 해마다 음력 11월 11일로 정해졌는데 올해는 때마침 양력으로 설날인 1월 1일이어서 공교롭게도 음력 11월 11일, 약력 1월 1일을 합쳐서 1이라는 숫자가 여섯 개나 중첩되는 날이 되었다. 1이 여섯 개 중첩하는 것은 땅의 수가 6인 것과 관련시켜 볼 때 한반도에 좋은 일이 일어날 징조라고 참가자들 모두는 기뻐하였다. 본래 천부경을 대표하는 상징 수는 1이다. 1은 하늘, 하나님이면서 모든 숫자의 출발이다. 천부경은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에서 시작하여 일종무종일(一終無終一)로 끝난다. 이는 “우주에는 시작과 끝이 없다”는 뜻이다. 천부경에서 1은 모두 11번 나온다. 천부경에 나오는 모든 숫자의 수는 모두 31자이다. 천부경의 81자 중 3분의 1 이상이 숫자로 이루어진 셈이다. 그래서 세계적인 수학자들은 천부경의 숫자를 통해 우주과학의 신비를 풀려고도 한다.

천주교가 이 땅에 들어와서는 ‘여호와 하나님’을 중국의 번역을 따라서 ‘천주’라고 불렀다. 개신교가 이 땅에 들어와서 처음에는 ‘여호와’라고 불렀으나 도대체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먹혀들어가지 않자 언더우드 박사 부인이 한국 토속신앙에서 ‘하늘’신앙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하늘님, 하느님’을 번역어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신도들이 우후죽순처럼 번져갔다. 오늘날 한국은 기독교대국이 되었지만 모두 하느님(하나님)의 위력 덕분이다. 바로 그 하느님이 천부경을 비롯한 삼일신고, 참전계경 등 천부삼경의 하느님이다. 말하자면 오늘날 우리의 하느님은 천부경과 기독교가 융합한 하느님이다. 지난 1월 1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2회 세계 천부경의 날’ 기념식은 우리의 하늘신앙, 하느님 찾기 대회나 마찬가지였다. 을미년의 개시를 앞두고 열린 세계 천부경 큰잔치는 한국 역사와 문화의 복권을 예고하는 듯했다.

천부경은 이른바 환인환웅단군으로 이어지는 환인천제시대부터 우리민족의 경전이었다고 말하기도 하고, 그 이전 부도지(符都誌)에 나오는 마고(麻姑)신화시대 동이족의 경전이었다고 하는 이도 있다. 부도지의 ‘부(符)’자는 천부경의 ‘부’자이고, ‘도(都)’자는 마을사회였음을 나타낸다고 한다. 부도지란 천부경을 경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마을사회의 역사를 말한다. 고려 때 목은 이색과 휴애 범세동 선생은 천부경 주해를 썼다고 했으나 지금 우리가 접할 수 없다. 조선조에는 단군과 천부경 관련서적들은 일종의 금서처럼 취급되고 조정의 명으로 소각시키기도 했다.

을미년(乙未年)은 일본의 자객에 의해 명성황후시해사건(1895년)이 일어난 지 120년이 되는 해이고, 그로부터 10년 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된다. 을미년은 여러모로 여성의 해로 상징된다. 과거에는 국모가 시해되는 어둠의 해였지만 올해는 여성대통령 재임 기에 통일에의 초석을 다지는 밝은 해가 되도록 우리 모두가 노력해야 할 것이다.

박정진 객원논설위원·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