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보기메뉴 보기 검색

[김현주의 일상 톡톡] "아이만 보면 때리고 싶어요"

입력 :
수정 :
폰트 크게 폰트 작게

#1. 주부 최모(33)씨는 14개월 된 아이가 음식을 먹다가 흘리거나 보챌 때면 어김없이 소리를 지르며 때리게 된다고 고백한다. 최씨는 열심히 태교를 하며 여느 엄마처럼 아이가 태어나기만을 고대했다. 그는 “막상 아기가 나오자 육아로 인한 스트레스를 술로 달랜다”고 하소연했다.

#2. 만 5개월 된 아들을 둔 김모(29)씨 역시 보채는 아기를 돌보다가 순간적으로 아이의 목을 조르거나 계단 밑으로 던져버리려 했다고 털어놓았다. 김씨는 “아이에게 자신이 언제 어떤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며 괴로워했다.

산모 10명 중 6명은 출산 이후 5년 내에 경도 또는 중도의 우울을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산후우울증은 보통 출산 직후보다 시간이 지날수록 정도가 심해졌다. 이완정 인하대 아동학과 교수와 이 대학 박사과정 김균희 씨는 최근 한국아동패널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어머니의 우울 변화궤적 및 예측요인 분석' 논문에서 한국아동패널 2008∼2012년 자료를 분석해 이 같이 소개했다.

이 논문에 따르면 2008년 아이를 낳은 1332명의 어머니를 대상으로 출산 5년째인 2012년까지 총 다섯 차례에 걸쳐 우울수준을 측정한 결과, 매년 대상자의 21∼23% 가량이 임상적으로 우울하다고 판단되는 경도·중증도의 우울을, 6∼7% 가량이 심각한 중도 이상의 우울을 보였다.

다섯 차례 조사 중 한 시점 이상에서 경도·중증도 또는 중도의 우울수준을 보인 '우울위험' 집단은 전체의 59.9%인 798명이었다. 산모 10명 중 6명은 아이를 낳은 지 5년 이내에 적어도 한 번 이상 우울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우울위험 집단의 우울 평균 점수는 1년째에 7.48점에서 2년째에 7.30점으로 낮아졌다가 3년째에 7.68점으로 다시 높아져 4년째에 7.93점, 5년째 7.72점을 기록했다. 출산 직후보다 출산 4∼5년째에 우울 수준이 더 높게 나타나는 것이다. 전체 대상자 가운데 중도 이상의 심각한 우울 수준을 보인 어머니의 비율도 1년째의 6.2%에서 해마다 늘어 5년째에는 7.7%에 달했다.

◆ "산모 60%, 적어도 한번 이상 우울증 경험한다"

이러한 산후 우울증은 ▲자녀의 출생순위 ▲어머니의 양육 스트레스 ▲결혼 만족도 등의 요인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연구 결과 아이가 첫째에 가까울수록, 어머니의 자아존중감과 결혼만족도가 낮을수록 출산 초기 어머니의 우울 수준이 높았다. 또 산전 우울수준과 양육스트레스가 높을수록, 가족의 경제적 어려움 등을 경험할수록 우울의 초기치가 높게 나타났다. 연구자들은 "자녀 출산 후 우울을 경험하는 어머니의 비율이 높고 이들의 우울수준은 5년간 의미 있게 증가하는 것이 확인됐다"며 "어머니의 산후 우울이 나타나는 초기에 이를 중재하기 위한 지원이나 개입이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지적했다.

최근 경북의 어느 도시에서 주부 A씨가 생후 3개월 된 딸을 강에 던지고 자신도 뒤따라 투신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A씨는 현장에서 구조됐지만 딸은 결국 숨을 거뒀다. 결혼 13년 만에 어렵게 얻은 아이라 누구보다 기뻐했다는 A씨가 왜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 경찰 조사 결과, 그는 심각한 산후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87명의 산모들을 대상으로 한 산후우울증 진단 설문 조사결과에 따르면, 아이를 낳은 산모 중 약 20%가 정신과 치료를 요하는 우울증을 겪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전문가들은 “그만큼 산후우울증은 누구에게나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증세”라며 “그러나 가볍게 생각하고 방치할 경우 산모는 물론, 아기와 가족을 큰 고통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 다섯살 아들 앞에서 두살 딸 살해…산후우울증 주부 영장

큰아들 앞에서 막내딸을 살해한 주부가 경찰에 자수했다. 경찰에 따르면 당시 38살이었던 주부 구모씨는 최근 광주시 광산구 한 교회 내 신도들이 면담하는 공간에서 두살 막내딸의 코와 입을 손으로 막아 질식사하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큰아들을 낳은 직후인 5년 전부터 산후우울증을 앓고 있는 구씨는 이날 오후 집을 나선 뒤 인근 교회로 남매를 데려가 범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구씨가 범행할 당시 큰아들이 옆에 있었다. 구씨는 경찰에서 "남편을 닮은 딸을 보고싶지 않았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 범행 직후 112에 전화를 걸어 자수했다.

◆ '오메가-3' 부족, 산후우울증과 연관

산후우울증은 오메가-3 지방산 부족과 연관이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캐나다 몬트리올 대학 의과대학 예방의학과의 가브리엘 샤피로(Gabriel Shapiro) 연구원은 임신 중과 산후의 오메가-3 지방산 부족이 산후우울증을 가져올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고 캐나다의 일간 밴쿠버 선 온라인판이 보도했다.

오메가-3 지방산은 기분을 조절하는 뇌의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의 기능과 분비를 관장하는 5-HTT 유전자의 발현에 영향을 미치며 따라서 오메가-3 지방산이 부족하면 산후우울증이 올 수 있다고 샤피로 연구원은 밝혔다. 그렇지 않아도 임신 중에는 오메가-3 지방산이 모체에서 태반을 통해 태아에게 공급되고 출산 후에는 모유를 통해 신생아에게로 가기 때문에 임신 중과 산후 6개월까지는 오메가-3 지방산이 부족할 수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특히 임신 중에는 세로토닌을 만드는 화학물질인 트립토판이 태아발달을 위해 태반에도 필요하기 때문에 오메가-3 지방산의 보충을 통해 5-HTT 유전자의 활동을 촉진시킴으로써 세로토닌 생산 감소를 상쇄해 줄 필요가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이 연구결과는 캐나다 정신의학 저널(Canadian Journal of Psychiatry) 최신호에 실렸다.

◆ 정부, 산후우울증 의료비 지원 추진

정부가 임산부의 산후우울증에 대한 의료비를 지원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인 박광온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 5일 정부가 임신 초기부터 출산 후까지 산후우울증 치료비를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모자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고 밝혔다. 이 개정안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임산부의 산후우울증 등 정신건강을 위한 상담·교육, 의료비를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현재 산모들은 산후우울증과 관련해 보건복지부 지침에 따라 정부가 운영 중인 전산망을 통해 온라인으로 상담을 받거나 보건소에 비치된 자가검사지를 통해 산후우울증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정도의 소극적 지원을 받아왔다.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될 경우, 앞으로 정부가 상담 및 교육을 통해 산후우울증을 정기적으로 관리하는 것은 물론 산후우울증이 발생하였을 경우 의료비를 지원받을 수 있게 된다.

박 의원은 "최근 출산 후 우울증에 시달리던 산모가 출산한 자녀를 살해하거나 자녀 출산 후 우울증으로 산모가 자살한 사건이 발생하는 등 임산부의 임신 또는 출산에 따른 정신건강 상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며 "해외 복지선진국들처럼 산후우울증에 대한 체계적 관리와 지원이 병행돼야 산모들과 아이들이 건강하고, 나아가 출산률이 높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