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부 집권 중반기 내각을 이끌어갈 구원투수로 등판한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가 26일 책임총리제 구현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이 후보자는 이날 서울 통의동에 마련된 집무실로 출근하면서 기자들과 만나 “책임총리란 말이 법률 용어는 아니고 정치적 용어”라고 말했다. 정홍원 총리와 후속 개각에 대한 협의가 진행 중이냐는 질문에 대해선 “예민한 문제인 만큼 나중에 이야기하겠다”고 피해갔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제시했던 책임총리는 헌법에 보장된 국무위원 제청권과 해임건의권 등을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총리를 말한다. 개헌 지지파가 문제점으로 지적하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을 막고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한을 분산하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헌법이 보장한 총리의 권한은 역대 정부에서 사실상 사문화됐다는 게 중론이다. 정 총리가 문형표 보건복지부,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 제청과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 해임을 건의했다고는 하지만 타이밍상 청와대의 결심을 실행에 옮기는 형식에 불과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 후보자는 3선 국회의원과 충남지사를 거치며 정치적 내공을 다졌다. 세월호 참사와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 등 연이은 악재로 여권 전반의 지지율은 바닥을 찍으면서 박근혜정부의 새로운 국정동력이 절실한 상황이다. 허울뿐인 역대 ‘의전·관리형’ 총리와 달리 이 후보자는 ‘실세 총리’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친박(친박근혜)계 이 후보자는 2009년 이명박정부 당시 세종시 수정안 처리에 반대하며 충남지사직을 던지는 등 소신행보를 이어왔다. 반면 지난해 말 청와대 오찬회동에서 ‘각하’ 호칭이 논란이 된 것처럼 박 대통령과의 친밀한 관계가 오히려 직언하는 데 걸림돌이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새누리당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난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오른쪽)가 26일 국회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실에서 협상 파트너였던 우윤근 원내대표와 만나 선물로 받을 새누리당 정두언 의원의 저서인 ‘최고의 총리, 최악의 총리’에 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이제원 기자 |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가 26일 오전 서울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에 마련된 집무실로 출근하는 길에 책임총리제 등과 관련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재문 기자 |
정부는 이날 이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 후보자는 서울 강남 도곡동 소재 아파트와 3억5000여만원의 예금 등 본인과 부인 명의 재산으로 모두 11억1463만여원을 신고했다. 외가로부터 공시지가 기준 18억억원이 넘는 토지를 증여받은 것으로 알려진 차남은 ‘독립생계 유지’를 이유로 재산 고지를 거부했다. 앞서 병역 의혹에 대해 해명한대로 본인은 ‘부주상골’을 사유로 보충역 판정을 받았고, 차남은 ‘불안정성 대관절’로 병역이 면제됐다.
김희락 총리실 정무실장을 단장으로 한 인사청문회 준비단도 이날 출범해 본격적인 청문회 준비에 착수했다. 준비단은 차남에 대한 토지 증여과정이 세금회피를 위한 편법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 “처가에서 부인에게, 다시 차남에게 증여를 하는 과정에서 총 5억4600여만원의 증여세를 냈다”며 “처가에서 차남에게 바로 증여했을 경우에 비해 5억300여만원의 증여세를 더 낸 것인 만큼 편법 증여 의혹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이 후보자는 이날 오후 국회를 찾아 새누리당 원내대표 시절 카운터파트였던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원내대표를 예방했다. 여야는 다음달 4∼6일쯤 인사청문회를 진행한 뒤 9일 본회의에서 임명동의안을 표결할 계획이다.
박세준·김건호 기자 3ju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