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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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불거지는 '국정원 정치개입' 논란

野 "노무현 수사 이인규 폭로 정치쟁점화"… 국정원 "사실무근"
이인규 전 대검 중앙수사부장
이인규의 ‘입’이 정가를 흔들고 있다.

2009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를 지휘했던 이인규 전 대검 중앙수사부장이 당시 국가정보원이 수사 내용을 유출해 언론플레이를 펼쳤다고 폭로해 파문이 일고 있다. 국정원은 즉각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하며 진화를 시도했으나 야당은 쟁점화에 나서 국정원의 정치개입 논란이 다시 달아오를 조짐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원내대표는 25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이 전 부장의 발언에 대해 “폭로대로라면 국정원의 행위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중대한 범죄행위로, 반드시 관련 사실을 명백히 밝혀야 한다”며 “(법사·정보위 등) 관련 상임위를 긴급소집해 이 문제를 철저히 가리겠다”고 밝혔다. 강경파인 정청래 최고위원도 “천인공노할 국정원의 만행을 규탄하며 노 전 대통령이 겪었을 고통을 생각한다”고 거들었다.

김영록 수석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에서 “수사 당시 근거 없는 피의사실이 무차별적으로 흘러나와 의문을 자아냈는데 대통령이 돌아가신 이제야 그 이유를 알게 되다니 침통하다”며 “공작정치의 실체가 드러난 만큼 왜 국정원이 전직 대통령을 망신주기 위해 공작정치를 벌였는지 그 이유를 반드시 밝혀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이 전 부장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노 전 대통령 부인인) 권양숙 여사가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받은 명품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는 언론 보도 등은 국정원 주도로 이뤄진 것”이라며 “검찰은 전직 대통령에 대한 수사 내용으로 ‘언론플레이’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전 부장은 “노 전 대통령에게 ‘시계는 어떻게 하셨습니까’라고 묻자 노 전 대통령이 ‘시계문제가 불거진 뒤 (권씨가) 바깥에 버렸다고 합디다’라고 답한 게 전부”라며 “논두렁 얘기는 나오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그런 식으로 (국정원이) 말을 만들어 언론에 흘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정원의 당시 행태는 빨대(익명 취재원) 정도가 아니라 공작 수준에 가깝다”고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박 전 회장으로부터 회갑선물(시계)을 포함한 금품을 받은 혐의로 2009년 4월30일 대검 중수부에 소환됐다. 일부 언론은 당시 ‘권 여사가 선물로 받은 1억원짜리 명품시계 두 개를 논두렁에 버렸다고 노 전 대통령이 검찰에서 진술했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노 전 대통령은 그후 열흘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전 부장은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한 달 반 만에 검찰을 떠났다.

이 전 부장의 폭탄 발언에 따라 야당의 칼끝이 다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향할 것으로 보인다. 김 수석대변인은 “이 전 중수부장이 언론플레이의 장본인으로 국정원을 지목한 만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개입 여부가 명명백백하게 밝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 전 원장은 국정원을 동원해 편파적인 댓글활동으로 2012년 대선에 개입한 것이 인정돼 최근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 상태다.

국정원은 이날 이 전 부장의 발언에 대해 “사실무근”이라면서도 구체적 해명은 내놓지 않았다. 국정원은 이 전 부장의 발언이 정치권의 의혹으로 커진 만큼 향후 내부적으로 추가 확인 절차를 밟을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영준·이희경 기자 yj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