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민의 투영이겠으나 틀린 말도 아니다. 물가에 대한 그의 평은 물가지표 흐름과 일치하는 것이다.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전년 동기 대비로 2년간 1%대로 낮게 기는 터다. 그렇다고 맞는 말도 아니다. “서민들도 살림하기 괜찮을 것”이라는 추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1%대 물가상승률을 두고 “저물가가 이어지고 있다”고 기사를 써본 기자라면 안다. “책상머리에 앉아서 뭘 안다고 이따위 기사를 쓰냐”, “먹고 살기 팍팍하기만 한데 어느 나라 얘기냐”식의 험구가 꼬리를 문다.
이들의 반응이 엄살이나 과장은 아니다. 서민들이 저물가를 느낄 수 없는 이유 또한 분명하기 때문이다. 전체 소비자물가지수가 1%대로 기고 있다지만 세부 내역을 보면 서민들이 ‘물가 포복’을 체감하기 어려운 이유가 발견된다. 우선 주거비, 전기·가스비 등 서민들에게 밀접한 품목들은 훨씬 높은 상승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 전기·가스비는 3∼6%의 상승 흐름이고 주거비는 ‘미친 전세’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치솟으며 집 없는 서민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1%대 물가상승률을 두고 편의적으로 ‘저물가’라고 표현하지만 이것이 물가의 절대수준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 저물가 흐름이 시작되기 전 물가는 이미 크게 뜀박질을 한 터다. 2007년까지 2%대이던 물가 상승률은 이명박정부 들어 4∼5%대로 뛰기 시작했다. 저금리·고환율 정책으로 돈이 풀리고 수입물가가 오른 결과다. 부채에 눌리고 소득은 게걸음인 서민 가계에 물가는 이미 오래전 버거운 수준으로 뛴 것이다.
하나의 물가지표를 두고 벌어진 이해의 간극을 보면 거의 다른 세상 수준이다. 부자는 “요즘 물가 참 싸다”라고 느끼는 반면 서민들은 체감할 수 없는 그 지표에 분노한다. 한 나라 경제의 큰 흐름을 보여주는 거시경제 지표는 객관적인 것이지만 이처럼 경제주체들의 해석은 주관적이다. 3만달러에 다가서는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나 900억달러에 육박하는 사상 최대 경상수지 흑자를 서민이 체감하지 못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류순열 선임기자 |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가 ‘부동산 3법’을 늦게 처리한 것을 빗대 “불어 터진 국수를 먹는 우리 경제가 불쌍하다”고 말했다. “그것을 그냥 먹고도 경제가, 부동산이 힘을 좀 내가지고 꿈틀꿈틀 움직이면서 활성화하고 있다”면서. 숱한 서민들이 장탄식하며 가슴을 쳤을 것이다. 정부의 부동산 부양책으로 주거비 부담이 가중되면서 그들의 삶은 갈수록 팍팍해지는 중이다. ‘원조 친박’, 이혜훈 전 의원조차 전셋값 폭등 이유로 부동산 3법을 지목했다.
양극화 세상에서 국내총생산(GDP)과 같은 거시경제 지표는 국민의 보편적 삶을 말해주지 못한다. 경제석학 조지프 스티글리츠가 “GDP 증가만을 추구하다가 정작 국민들을 더 못사는 사회로 몰아갈 수도 있다”고 경고한 게 2010년이다. 우리는 아직도 “빚 내 집 사라”는, 그 뻔한 부동산 중심 경기부양 레퍼토리다. 집 없는 서민은 등이 터져나가든 말든.
류순열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