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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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사가 수행하 듯… 느림으로 삶을 들여다 보다

[편완식이 만난 사람] 美 비디오아티스트 빌 비올라
2007년 베니스비엔날레 기간 중에 베네치아시 산마르코 광장 인근의 산 갈로 성당에 가 본 적이 있다. 비디오 영상작업으로 선승처럼 내면을 응시하는 미국의 비디오아티스트 빌 비올라(64)의 영상작품을 공개하는 자리였다. 물을 흠뻑 뒤집어쓰고 있는 인물들과 물소리가 압도적으로 다가왔다. 어둠속의 영상작품은 숭고미를 떠올려주기에 충분했다.


중세에 만들어진 작은 예배당의 공간과 어우러져 묘한 명상적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 어떤 강론이 이보다 더 강렬할 수 있을까. 빌 비올라를 다시 서울에서 마주했다. 삶과 죽음의 깊은 이면을 비디오로 그려내 영상 시인으로 불리는 그가 5월 3일까지 국제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갖기 위해 방한했다. 3번째 국제갤러리 전시다.

그의 작품에선 수도원의 수사 냄새가 나기도 하고 산사의 선승 자취가 느껴지기도 한다.

“1년 반가량을 일본 선승한테 선불교를 공부했습니다. 제 인생관에 커다란 변화의 계기가 됐지요. 스승은 어린아이처럼 장난기가 있는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인물이었습니다. 어느 날 제 작품을 보고 이마를 손바닥으로 치시며 이야기가 너무 많다고 하시기도 했어요.”

사실 선승과 수도사의 수행은 절대와의 합일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많다. 빌 비올라 작품은 천천히 걸으며 명상하는 수행자의 경행(經行)을 연상시킨다. 슬로모션처럼 흐르는 영상이 그렇다.

그는 1999년 로스앤젤레스 폴 게티 미술관 앞에서 한 노인의 죽음을 목격하며 적은 메모를 상세히 읽어줬다. “건장한 구급요원들이 무릎을 꿇고 심장 마사지를 하고 있었다. 심장을 누를 때마다 흰 머리가 이리저리 흔들거렸다. 손은 옆으로 축 늘어져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길 옆에서 벌어진 일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지나쳤다. 미술관에 들어가 ‘수태고지’를 보고 나왔다. 망자는 이미 보이지 않았고, 그가 죽어간 돌벤치에는 더 나이 든 노인들이 앉아 쉬고 있었다. 아버지가 생각났다. 내 작업은 여기서 시작됐다.” 굳이 그는 왜 이 장면을 슬로비디오처럼 진술하고 있을까. 선불교에 심취했던 스티브 잡스가 떠올랐다. 잡스는 선불교를 접한 일이야말로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 중의 하나라고 말했을 정도다. 일상처럼 그저 하찮게 스쳐 지나가는 것에 우리의 본질이 있음을 그는 알았다. 단순함이 궁극의 정교함이라는 애플의 디자인 철학이 여기서 나왔다. 단순한 것에서 얻어진 직관이다.

빌 비올라는 인간 감정의 이미지를 길게 늘어뜨려 보여주려 한다. 선불교가 치열한 자기 응시를 통해 마음의 깨달음을 얻는 이치라 할 수 있다. 빠른 스침이 아니라 느린 응시라 할 수 있다.

“저는 이런 과정을 통해 저 자신의 눈의 프레임을 확장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의 작품속 느리게 흘러가는 화면 속의 시간은 일상의 사소한 한때를 깨달음의 순간으로 바꿔놓는다.

전시엔 지난해 런던 세인트폴 성당에 설치된 ‘순교자(Martyr)’ 시리즈 중 하나인 ‘물의 순교자’도 나왔다. 발목이 밧줄로 묶인 남자가 공중에서 쏟아져내리는 물을 맞으며 거꾸로 들려 올라가는 영상이다. 불·물·공기·흙으로 표상되는 ‘삶의 바다’에서 소리없이 감내하는 인간상을 그린 영상이다.

“순교자라는 말은 ‘증인’이라는 의미의 그리스어에서 왔습니다. 오늘날 대중매체로 인해 우리는 종종 타인의 고통을 무덤덤하게 보는 증인으로 전락했습니다.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아요. 우리는 여전히 순교자처럼 죽음을 무릅쓰고 지켜야 할 가치가 있습니다.” 그는 여전히 인간은 신념을 위해 고통을 견딜 수 있음을 말하고 싶어한다.

인간은 매번 격렬한 변화를 겪으면서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 ‘도치된 탄생’. 탄생과 죽음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국제갤러리 제공
전시장에 들어서자 한 남자가 검은 액체를 뒤집어쓰면서 어둠 속에 서 있다.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가 빈 공간에 가득 울려 퍼진다. 액체가 서서히 상승하더니 곧 노호한 폭우로 고조된다. 칠흑같은 절망은 액체가 붉게 변하면서 두려움으로 바뀌지만, 인물은 강건하게 서 있다.

백색 액체의 흐름은 안도와 보살핌을 상징하며 곧이어 깨끗한 물로써 정화된다. 마지막으로 나타나는 부드러운 안개는 수용, 각성, 그리고 탄생을 상징한다. 액체는 어둠에서 빛으로의 승화를 통해 삶의 필수 요소인 흙, 피, 우유, 물, 공기와 더불어 탄생과 죽음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들을 보여준다. 5m 높이에 달하는 대규모의 스크린에 영사된 작품이다.

빌 비올라는 정신적 모색에 대한 메타포로 사막풍경을 사용하기도 한다. 욕망 등 감정들을 극단으로 환기시켜 우리 자아를 들여다보려는 것이다.

“우리가 신기루 같은 우리 내면을 지각하기 위해선 스스로의 욕망을 직시해야 합니다.”

이웃한 학고재갤러리에선 그의 스승인 백남준(1932∼2006)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그는 시러큐스 대학 졸업반 때부터 백남준의 조수로 일했다.

“백남준 선생은 비디오 아트의 모든 것을 누구에게나 오픈한 열린 인물입니다. 늘 함께 일하는 이들에게도 ‘당신은 천재’라고 치켜세워주셨지요.”

그는 지난 40여년간 인간적 경험을 응시하면서 인간존재를 탐구했다. 선불교적 자기 응시다.

“오랜 기간에 걸친 영상 작업을 통해 저는 그저 흘러가는 시간을 경험하고 부여잡았습니다. 시간을 명백한 물질처럼 경험했다고 할 수 있지요. 제게 영상은 가장 실질적인 재료가 됐습니다.”

그의 작품은 이제 인간적 경험의 모색과 동의어로 인식되고 있을 정도이다. 큐레이터 제롬 뇌트르는 “빌 비올라가 지난 40년간 세 가지 형이상학적 질문들과 힘겹게 싸웠다”고 말했다. 즉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 존재하는가, 그리고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이다. 본질적이고 존재론적인 질문들을 던지면서 시간의 심오한 특질들을 기록했다. 보고 듣는 행위를 통해 각성의 순간을 경험하도록 하고 있다.

1951년 뉴욕에서 태어난 빌 비올라는 1995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미국관을 대표하는 작가로 선정되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주요 개인전으로는 1997년 미국 휘트니미술관의 ‘빌 비올라: 25년간의 연구’, 2003년 미국 폴 게티미술관의 ‘욕망’, 2006년 일본 모리미술관의 ‘첫 번째 꿈’, 2008년 팔라초 델레 에스포시초니와 2014년 파리 그랑팔레에서의 개인전 등이 있다. (02)735-8449

편완식 미술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