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리콴유다. 그는 1983년 8월 국정연설을 통해 ‘결혼 대논쟁’을 불렀다. 그가 부르짖은 것은 고학력층의 결혼 활성화였다. 싱가포르 영자지 더스트레이츠타임스는 당시 이렇게 전했다. “총리는 고학력자들이 더 많은 아이를 낳지 않으면 25년 내에 국가의 인적 자원이 고갈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국정연설은 말잔치로 끝나지 않았다. 법제적, 정책적 처방으로 이어졌다. 가족계획국부터 ‘두 자녀’ 캠페인을 뒤집었다. 고학력자에게만 혜택을 준 차별적 조치였다. 그런데, 리콴유는 왜 그런 발상을 했을까. 고학력자의 출산 기피 경향이 드러난 80년 합계출산율 때문이었다고 한다. 국정연설에서 이렇게 개탄했다. “대졸자 두 명이 25년 만에 한 명의 대졸자밖에 생산하지 못하는 데 반해 교육받지 않은 노동자 두 명은 세 명을 재생산한다면, 능력의 저하를 어떻게 피할 수 있겠는가?”
중국 쿵웨이커의 발언도 리콴유에 못지않다. 엽기적 수준에 가깝다. 요약하자면, 부부 중 한 명이 박사일 경우 출산 제한 없이 세 자녀 이상을 낳도록 하고 우수 인재 자녀는 국가 보조금을 받도록 하자고 했다. 리와 쿵의 발언 사이에는 32년의 간격이 있다. 하지만 내용은 오십보백보다. 아인슈타인 말마따나 인간의 어리석음에는 끝이 없다.
과학 상식만 좀 있다면, 두 사람이 어떤 함정에 빠졌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우생학의 함정이다. 우수한 성적이나 성공은 대체로 교육의 결과일 뿐, 유전적 결과로 단정할 수 없다. 리콴유도 그랬지만 쿵웨이커도 원인과 결과를 뒤섞어 발이 꼬였다. 미국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는 ‘결혼 대논쟁’ 때 “학교에 다닌 햇수로 유전적 지능을 추론하려는 시도보다 더 어리석고 독선적인 것은 없다”면서 비판의 날을 세웠다. 공자의 적손도 쓴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두 사람이 시행 혹은 제안한 정책은? 100% 엉터리다.
이승현 논설위원 |
정부는 2006년 이후 66조원의 예산을 저출산 대책에 쏟아부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인 것일까. 그 많은 돈이 어디로 갔는지 모를 일이다. 지난달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에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이삼식 박사는 “2006년 이후 1·2차 저출산 대책 기간 동안 많은 투자를 했지만 출산율을 끌어올리는 데 실패했다”고 했다. ‘사망 판정’이었다. 우리 법제적, 정책적 처방이야말로 100% 엉터리인 것은 아닌지 정색을 하고 돌아볼 때가 됐다.
리콴유에게 충격을 준 80년 통계는 우리 눈으로 보면 별 게 아니다. 교육을 받지 못한 여성은 평균 3.5명을 낳고 고학력 여성은 1.65명을 낳는다는 통계였으니까. 대한민국 통계는 그에 견줄 수 없이 열악하다. 그런데도 다들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이 정도면 둔감을 넘어 무념무상의 경지다. 다들 해탈을 눈앞에 둔 것일까. 정부 대책에도 사실 큰 관심이 없다. 이러니 부실 대책이 그대로 집행되는 것이다. 66조원이 어디로 흘러갔는지도 관심 밖이다.
이제 겸허히 자문해 보자. 리콴유와 쿵웨이커, 그리고 대한민국. 이 중 어느 쪽이 더 엉터리인가. 더 혹독히 비난받아 마땅한가.
이승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