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근 성균관대교수·동양철학 |
인문학은 사람이 부분적인 삶에 휘둘리지 않고 한 번뿐인 삶을 의미 있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성찰하도록 생각하게 만든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인문학 열풍이 왜 부는지 이해할 수 있다. 시민이 일상적으로 만나는 ‘부분적인 나’를 돌아보며 ‘전체적인 나’를 찾으려고 움직이다 보니 인문학으로 눈을 돌리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인문학은 원래부터 세상과 부분적으로 만나는 부분적인 삶, 즉 취업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특성 때문에 인문학을 ‘쓸모없음’의 학문(無用之學)이라 말한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인문학자나 철학자가 될 수 없다. 사람이 인문학의 세례를 받아 전체적인 나를 만나게 되더라도 결국 부분적인 나로 돌아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체적인 나를 만난 사람은 부분적인 삶에서 이전과 다른 모습을 보일 수 있다. 실례로 인문학을 배우기 전에 하나라도 많이 가지려는 ‘소유’에 혈안이 됐던 사람이 인문학을 배운 뒤에 세상을 뜻 있고 아름답게 살아가려는 ‘의미’에 관심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보면 인문학은 원래 구체적인 생업과 연관이 없기 때문에 ‘쓸모없는’ 학문이었지만 전체적인 나를 돌아보게 하므로 무엇이 쓸모 있고 없는지를 새롭게 바라보도록 만든다. 이런 특성 때문에 인문학을 ‘쓸모없음의 쓸모 있는’(無用之用) 학문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인문학이 사회적으로 확장성을 가질 수 있는 부분이다. 상품, 제품이 결국 사람이 사용하는 것이라면 전체적인 나를 말하는 인문학이 사회의 다른 영역으로 섞여 들어가서 자신의 쓰임을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상품이 기능, 디자인만이 아니라 인문학적 가치를 갖출 때 의미 있는 물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취업률이 낮다는 기준으로 인문학을 가엽게 바라볼 것이 아니라 다른 영역과 뒤섞일 수 있는 길을 찾지 못했다는 점에서 자성을 해야 할 일이다. 이렇게 보면 인문학과의 학생들은 기성세대가 찾아야 할 길을 찾지 못해 취업률이 낮다는 누명을 쓰고 있는 피해자이다. 이제 통계 수치를 들여다보기보다 길을 찾는 데 관심을 쏟아야 할 때이다.
신정근 성균관대교수·동양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