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와 6·25전쟁을 거치면서 적과 동지라는 이분법으로 철저히 무장해야 생존했던 강박증적인 유산이라는 것이다. 철저히 자기자신에 철갑을 두르고 더욱 스스로를 익숙케 만드는 것이 적과 구별하고 이길 수 있는 방법이었다. 다른 여지는 스며들 공간이 없었다.
친구는 말했다. 미국과 중국을 둘러싼 외교 문제부터 북한 문제까지, 그리고 당면한 경제문제까지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는 것이 해결의 시작이라 했다. ‘낯설게 하기’를 하라는 것이다. 북한 문제도 기존의 익숙한 패러다임으로 몰고 가서는 안 된다는 논리다. 북한도 우리도 낯설게 하기에서부터 새로운 타개책이 도출될 수 있다는 얘기다. 남북이 모두 익숙함에만 매달린다면 한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단언이다. 산적한 우리 정치사회 문제도 예외가 아니다.
사실 미술에서조차도 ‘낯설게 하기’가 새로운 창작의 키워드가 된 지 오래다. 벨기에의 세계적 작가 르네 마그리트는 이를 가장 잘 활용한 작가다. 예를들어 큰물고기가 창문이 있는 방 안에 놓이면서 생경한 풍경이 된다. 하나의 사물을 원래 있던 장소에서 완전히 벗어나 전혀 엉뚱한 곳에 배치하니 새롭고 신비한 분위기가 생성된 것이다. 거대한 바위가 중력으로부터 자유로이 공중에 떠 있기도 한다. 바다를 배경으로 물고기 몸통에 인간 다리를 한 형상을 그리기도 했다. 인어를 연상키는 ‘잡종’의 탄생이라 할 수 있다. 각 사물의 특징들을 결합해 전혀 다른 형태를 얻어내고 있는 것이다.
단순히 사물의 크기만 변화시켜 예상치 못한 결과를 얻어 내기도 했다. 거대한 사과 하나가 사각공간을 꽉 체운 모습은 압도적이다. 같이할 수 없는 사물의 만남도 낯설게 하기의 한 방법이다. 우산 위에 물이 든 물겁을 위치시켜 그린 그림이 대표적 사례다. 별거 아닌 두 개의 일상 사물을 붙여 그려 놓으니 분위기가 묘하다.
마그리트는 낯설게 하기의 단골 메뉴로 이미지 중첩을 애용하기도 했다. 발과 신발을 중첩시켜 하나의 이미지로 만들어 냈다. 각기 다른 두 사물의 유사이미지가 하나로 포섭되면서 또 다른 느낌을 준다.
마그리트는 중절모를 쓰고 낙엽 지는 숲 속을 걷고 있는 남자의 등에 보티첼리의 ‘프리마베라’에 나오는 ‘봄의 여신’을 그려 넣기도 했다. 양립할 수 없는 것을 하나의 그림 안에 풀어낸 것이다. 일종의 패러독스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
작금의 대한민국 공동체도 그런 것이 아닌지 곱씹어 봐야 할 것 같다. 익숙함에 보호망을 치고 철갑을 둘러 전의만 불태우고 있지 않나 묻고 싶을 뿐이다. 외교도 국방도, 통일 문제도, 남북관계도 예외가 아니다.주변국의 상황은 물론 북한 문제 까지도 낯설게 하기를 통해 해법을 찾아나가야 한다.
친구는 한국의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변한 게 없다고 말했다. 이제 익숙함의 강박증에서 벗어날 때라고 했다. ‘낯설게 하기’의 두려움이 여전히 우리 사회를 짓누르고 있다. 색깔논쟁이 종북논쟁으로 이어지는 식이다. 낯설게 하기는 다양한 시각과 해법에 이르는 지름길이다. 우리모두가 익숙함으로부터 이별연습을 할 때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