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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더 딥 블루 씨…당신의 사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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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티건 원작 바탕 1950년대 영국 재현…불륜 소재지만 다른 빛깔의 해석 담아

1950년대 런던을 배경으로 남녀의 아픈 사랑과 파멸을 다룬 ‘더 딥 블루 씨’는 연기와 의상, 소품, 영상미 등에서 우아한 클래식의 느낌에 현대적 해석을 곁들여 스타일리시함을 부각시키고 있다.
‘사랑보다 깊은 중독’, ‘햇살 뒤의 폭풍처럼 격렬하게 빠져든다’ 등의 홍보문구에 낚여 스크린을 후끈 달구는 농염한 외설 영화로 생각한다면 크게 빗나간다. 

테런스 래티건의 탄탄한 원작을 바탕으로 1950년대 영국을 재현해 낸 ‘더 딥 블루 씨’는 사랑에 대해 서로 달리 생각하고 해석하는 남녀가 첫눈에 빠져들면서 겪게 되는 가슴 아픈 비애와 파멸을 그려낸 영화다. 

성직자인 아버지로부터 욕망과 자유를 억압 받으며 규칙과 절제 속에 자란 헤스터(레이철 와이즈)의 결혼생활은 설레임이 없는 안정 뿐이다. 어느 날, 우연히 만난 남자 프레디(톰 히들스턴)를 통해 무미건조한 삶의 틀을 깨고 지독한 사랑에 몸을 던지게 된 그녀는 내재된 욕망과 열정에 눈을 뜨지만 그녀의 사랑은 이내 곧 집착에 빠지고 만다.

영화는 불륜을 소재로 삼았지만 사실은 ‘사랑’을 이야기한다. 배우자의 부정을 추궁하거나 배신감을 따지기보다는 각기 다른 형태와 빛깔을 띤 사랑을 조화롭게 담아내며 조심스레 공감을 끌어내고 마침내 로맨스 영화의 매력을 발산한다. 

오직 사랑만을 바라는 여인 헤스터, 솔직하고 자유분방하며 얽매이지 않는 사랑을 원하는 남자 프레디, 그리고 표현에 서투르지만 언제나 듬직한 헤스터의 남편 윌리엄(사이먼 러셀 비엘). 영화는 이 세 사람이 지닌 사랑에 대한 서로 다른 인식과 방식을 흥미롭게 묘사한다. 사랑하는 상대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사랑’을 바라면서 그 사랑이 어긋나고 파멸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섬세한 감성으로 풀어나간다. 


헤스터는 자신보다 프레디를 더 사랑하는데, 이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프레디 곁에 있을 때면 그녀는 체면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 그녀의 결혼생활은 사실 그다지 불행하지 않았고, 꽤 만족스럽게 지낼 수도 있었지만 삶 속에 무엇인가 빠진 것을 찾아 자신이 갇혀있던 우리를 깨고 나온다. 그녀는 불륜으로 남편에게 치명적 상처를 입히지만, 동시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욕망이 너무나도 안타깝게 느껴지도록 객석마저 동화시키는 힘을 지녔다. 

프레디는 섹시하고 고혹적이지만 누군가를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남자는 아니다. 헤스터에겐 까다롭게 굴며 함부로 대하기도 한다. 

“여자란 처음 청혼하는 남자와 결혼하고 처음 유혹하는 남자랑 사랑에 빠지지.”

그의 사랑에 대한 생각을 잘 나타내주는 대사다. 2차 대전 중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해 공을 세웠던 그는 아직도 1940년대 후반 전쟁 중에 머물러 있다. 시간이 갈 수록 헤스터의 집착과 마주한 프레디 또한 사랑의 갈림길에 서며 위기를 맞는다. 결국 그녀 곁을 떠나기로 한 프레디가 말한다

“우린 서로에게 독이야. 자기 때문에 자살을 시도한 여자와 함께 살려는 남자는 없어. 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영화는 헤스터와 프레디 두 사람의 불꽃사랑에 많은 분량을 할애하지만 중반부를 넘어설 무렵 남편 윌리엄의 사랑 고백을 넌지시 밀어넣는다. 자신을 배신하고 떠난 아내 헤스터를 찾아가 “당신의 불행을 눈으로 보고 싶어 왔다”는 윌리엄이 털어놓는다. “처음엔 당신이 너무나도 미웠지.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미움이 엷어지고 대신 그 자리를 후회가 차지하더군.”

어찌 보면, 사랑에 대한 정의는 늙고 초라해진 남편을 위해 오랜 세월 병수발을 들어 온 집주인 여자가 내리는 듯싶다.

“사랑이 뭔지 아세요? 누군가의 뒤를 닦아주고 지린 시트를 갈아주는 거죠. 그의 자존심을 지켜주면서요. 그렇게 함께 흘러가는 거죠.”

프레디가 떠나기 전 헤스터에게 건넨 “앞으로 어떡할 거야”라는 질문은 마치 관객들에게 ‘당신의 사랑은 어떠십니까’라고 묻는 것처럼 들린다.

김신성 기자 sskim65@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