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여년 뒤 1587년 귤강광(橘康廣)이 일본 국사(國使)로 왔다. ‘선조수정실록’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평수길(平秀吉)이 말하기를 ‘우리 사신은 매양 조선에 가는데 조선 사신은 오지 않으니 우리를 얕보는 것’이라며 귤강광을 보내 통신을 요구했다. 서신의 사연이 거만했다. ‘천하가 짐의 손아귀에 돌아왔다’는 말이 있었다.” 평수길은 풍신수길(豊臣秀吉·도요토미 히데요시)이며, 평(平·다라이)은 풍신을 쓰기 전의 성이다. 이런 내용도 있다. “66주의 영토에 일백만 정병을 훈련시켰으니 일본이 이처럼 성대한 적은 없었다.”
조선은 위험하다는 것을 알았다. 임진왜란이 터지기 두 해 전, 황윤길과 김성일을 일본에 보낸 것도 이 때문이다. 돌아와 무엇이라고 했던가. 황윤길은 “반드시 병화(兵禍)가 있을 것”이라고 하고, 김성일은 “그런 정세를 보지 못했다”고 했다. 황은 서인, 김은 동인이었다. 유성룡이 김성일에게 “왜 그랬느냐”고 물었다. 김성일 왈 “황윤길의 말이 너무 지나쳐 인심이 놀랄 것 같아 해명한 것뿐이다.” 이런 황당한 일도 있는가. 조선 백성은 7년에 걸친 왜란에 어육 신세로 변했다.
역사는 반복되는 걸까. 100여년 전에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광복 70년, 한·일 수교 50년. 일본과의 관계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일본은 달라졌다. 2000년대 중반을 고비로 크게 변했다. 2005년, 일본 ‘방위백서’에 처음으로 독도를 “일본의 고유영토”로 규정했다. 지금은 초·중·고교 교과서가 온통 “독도를 빼앗겼다”고 적고 있다. 일본군위안부 강제동원 반성? 침략전쟁조차 인정하지 않는다. 아베 신조 총리는 지난해 4월 이런 말을 했다. “침략의 정의는 정해진 것이 없으며, 국가 간의 관계에서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 초록은 동색인가. 자민당 총재특보 하기우다 고이치, 8·15 아베담화에 ‘식민지배와 침략에 대한 반성’ 문구를 넣을지를 묻자 이런 말을 했다. “그 말을 사용하지 않고는 국제사회가 납득할 수 없다면 ‘카피’해 담화를 내는 것도 가능하긴 하다.” 표리가 부동하다. 그는 “일본에는 전범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일본의 변화는 아베 총리 등장 후에 나타난 현상이 아니다.
집단자위권, 아리송하기만 하다. 한·미·일 세 나라 국방부는 일본의 집단자위권 행사 때 “제3국의 주권을 존중한다”고 합의했다고 한다. 제3국? 뭘 그리 복잡하게 말하는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강호원 논설위원 |
일본은 얼마 전 봐온 일본이 아니다. 상황은 임진왜란, 한·일 병탄 때와 빼닮았다. 힘 있는 일본, 무력을 강화하는 일본, 안하무인의 일본, 사냥감을 찾는 일본…. 일본만 그런가. 우리 상황도 똑같다. 상대의 모든 것을 부정하는 정치, 네가 잘못되기만 비는 정치, 갈라진 국론…. 다른 것이 무엇인가.
귤강광은 이런 말을 했다. “너희 나라 기강이 이미 허물어졌으니 어찌 망하지 않겠느냐.” 지금의 일본 리더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이사위감(以史爲鑒). 왜군을 원망해야 하는가, 조선을 탓해야 하는가. 침략의 추억을 불러내는 일본 정치인을 원망해야 하는가, 사분오열한 우리를 탓해야 하는가. 일본이 강한 때 한반도에 위험이 닥치지 않은 적은 없었다. 임진왜란 때 그랬으며, 제국주의 시대 때 그랬다. 지금이라고 다를까. 무엇을 믿고 싸움만 하는가.
강호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