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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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찬의 軍] 2020년대 '한국형 핵잠수함' 건조 가능할까

  

해군의 1800t급 잠수함.

한국이 2020년대 핵추진 잠수함을 건조할 수 있을까.

한미 원자력협정이 지난 22일 4년 6개월여의 협상 끝에 개정되면서 핵추진 잠수함 문제가 다시 거론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협정은 필요할 경우 20% 미만의 우라늄 농축을 추진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일정한 절차와 기준에 따라 고위급 협의 메커니즘을 통해 미국과 합의하면 가능하다.

20% 수준의 우라늄 농축이 이루어지면 핵추진 잠수함의 연료로 쓰일 수 있기 때문에 핵추진 잠수함 건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제약은 어느 정도 풀리는 셈이다.

하지만 미국의 핵 비확산 정책 등 국제정치적 문제와 기술적인 장애물들이 산적해 있어 실제 건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게 중론이다.

◆ 전략적 효용성이 큰 핵추진 잠수함

핵추진 잠수함 건조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은 핵잠수함이 기존의 디젤 잠수함에 비해 월등히 뛰어난 성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핵추진 잠수함은 수중에서 제한 없이 움직일 수 있고, 필요할 때만 물 위로 올라온다. 사람이 견뎌내기만 하면 30년 동안 계속 잠항할 수 있다. 부상(浮上)하지 않는 잠수함은 탐지하기 어려운데, 지상이나 해상 목표물을 타격할 수 있는 미사일까지 장착하면 상대는 큰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미 해군의 핵추진 잠수함이 국내에 입항하면 북한이 “북침전쟁의 야망”이라며 비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잠수함의 크기를 키울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크기가 커지면 무장도 많이 탑재할 수 있다. 순항미사일 핵추진 잠수함으로 개조된 미 오하이오급 잠수함은 154발의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을 탑재한다.

미 해군의 버지니아급 핵잠수함 `텍사스`.

주변국들이 신형 핵추진 잠수함을 개발하고 있는 것도 논란에 영향을 미친다. 중국의 핵잠수함 중 대표 격인 ‘시아’(夏)급은 탄도미사일을 탑재한 전략잠수함이다. 1척이 활동중이며 배수량은 6500t이다. 중국은 시아급을 대체할 진(晉)급 핵잠수함을 최근 실전배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배수량 1만2000t으로 시아급보다 2배 가까이 크며 8000km의 사거리를 자랑하는 JL-2 탄도미사일을 장착한다.

러시아의 신형 핵잠수함인 배수량 2만4000t의 보레이급은 SS-N-23/28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 12발을 탑재한다. 미국의 버지니아급 공격 핵잠수함에 대항할 야센급은 8600t으로 소음이 매우 낮아 탐지가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2020년대부터 전력화될 3000t급 잠수함에 원자로를 장착해 핵추진 잠수함을 보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프랑스의 루비급 핵추진 잠수함이 20% 수준의 저농축 우라늄을 연료로 쓰는 만큼 큰 문제는 없다는게 이들의 주장이다.

◆ 軍 “장기 추진과제, 당장은 어려워”

이같은 주장에 대해 해군 관계자들은 “장기적으로는 보유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잠수함 관련 기술의 한계, 핵 비확산을 중시하는 미국 정부의 정책 등이 해소되지 않는 한 핵추진 잠수함의 보유는 불가능하다는게 군 관계자들의 평가다.

해군 관계자는 “국내 잠수함 기술은 1800t까지만 검증된 상태”라며 “2020년대 도입할 3000t급 잠수함의 개발도 모험이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핵잠수함 건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선체 설계, 원자로 운영과정에서 발생하는 소음의 제거, 원자로 소형화 등 풀어야 할 기술적 문제가 많다”고 덧붙였다.

진수되는 1800t급 잠수함 `손원일함`


핵추진 잠수함이 30년 이상 연료교체 없이 활동하려면 90% 이상의 우라늄 농축이 필요하지만, 이는 핵폭탄을 만들 수 있는 수준의 농축으로서 국제사회의 격렬한 반발을 부를 수 있다. 20% 이하의 저농축 역시 5년 주기로 핵연료를 교체해야 하는데, 핵연료 교체는 매우 위험하고 복잡한 작업으로 꼽힌다.

핵추진 잠수함이 효율적으로 작전을 펼치기 위해서는 3000t급 잠수함보다 더 커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원자로에 탑재할 차폐벽, 냉각제 등 부수기재의 크기와 방음장비 탑재를 고려하면 최소 5000~6000t급의 크기를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선체 크기가 커지면 건조 비용이 상승한다. 또한 3000t 이상의 잠수함에는 첨단 기술을 대폭 적용하기 쉽지 않아 기술적 으로 퇴보할 가능성도 있다.

핵 비확산을 중시하는 미국 정부의 정책도 걸림돌이다. 군 관계자는 “현재 일본은 관련 기술을 축적하고도 미국을 의식해 핵추진 잠수함을 건조하지 않는다. 만약 한국이 핵추진 잠수함을 건조한다면 일본의 보유를 막을 수 없다”며 “한국이 미국의 대외 정책을 철저히 추종하지 않는 한 핵추진 잠수함 건조를 승인할리 없다”고 말했다.

한 군사전문가는 “우리나라는 계단을 올라가듯 잠수함의 크기를 조금씩 키워가며 관련 기술을 쌓아왔다”며 “지금 당장은 건조가 어렵겠지만 먼 미래를 염두에 두고 잠수함의 핵심 기술들을 축적하는 등의 장기적 계획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