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고창은 청보리가 뿜어내는 푸른 생명력으로 가득하다. 풍차 모양 전망대에 오르면 푸른 보리밭이 끝없이 펼쳐진 광경을 감상할 수 있다. |
영원히 자랄 듯한 기세로 하늘 향해 곧게 뻗은 보리들… 끝없이 펼쳐진 초록의 향연에 연인들은 가슴 가득한 설렘에, 어르신들은 옛 향수에 푹~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평생 살고 싶어.’
중·장년층뿐 아니라 젊은 층에도 익숙한 유행가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고 싶은 곳이 바로 푸른 초원이다. 도시 속 삶에 갇힌, 그래서 늘 탈출을 꿈꾸는 이 시대 사람들에게 초원은 꿈의 공간이다. 끝없이 이어진 광야와 그 위에 펼쳐진 녹색의 향연이 도시인에게 해방감을 주기 때문이다. 마음을 평안하게 해주는 그곳에서 사랑하는 연인,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만큼 행복한 것도 없다.
초원의 해방감과 행복감을 느끼기 위해 전라북도 고창으로 떠났다. 최근 봄 여행지로 각광받는 청보리밭을 찾기 위해서다. 보리는 대표적인 겨울작물이다. 가을이 끝나갈 무렵인 10월 말쯤 파종해 6월 초 수확한다. 수확을 한 달 남짓 앞둔 지금은 이삭이 팬 보리가 가장 생명력을 발휘하는 시기다. 당연히 푸름도 지금이 제일이다.
청보리밭 전경. 4월 하순이 가장 푸른 시기다. |
이삭이 패기 시작한 보리들. 6월이 되면 수확한다. |
보리밭에 보리 하나하나가 하늘을 향해 곧게 뻗어있다. 겨울의 언 땅을 뚫고 올라오는 보리는 이삭이 열리고 수확이 가까워져 오는 시기가 와도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영원히 자랄 기세로 끝없이 하늘을 찌를 듯 자랄 뿐이다. 생명력이 농축된 굳센 작물이다. 당당하게 서있는 보리가 자라는 너른 평야와 낮은 구릉들이 푸른 하늘과 맞닿아 있다. 봄의 정취를 더하는 새파란 하늘이다. 짙푸른 보리밭과 봄 하늘이 함께하는 모습은 시원하면서도 매력적이다.
청보리가 가득한 초원을 걷는 연인들 가슴에도 설렘이 움튼다. |
보리밭에는 산책하기 좋도록 작은 오솔길이 여러 곳 나 있다. 두 사람이 손을 맞잡고 걷기에 알맞은 너비다. 산책로 주변에 군데군데 심어진 유채꽃은 녹색 보리들과 어우러지며 상큼한 산책로 분위기를 연출한다. 마침 보리밭에는 몇몇 연인이 산책을 나왔다. 나란히 걸으며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대단한 내용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평범한 이야기라도 특별한 곳에서 특별한 사람과 함께하기에 그 경험은 잊을 수 없다. 연인들에게 푸른 보리밭은 그렇게 추억의 장소가 된다.
청보리밭 사이로 나있는 산책로. 두 사람이 나란히 걸을 정도의 너비다. |
보리는 나이 지긋한 이들에게도 추억의 대상이다. 먹을 게 귀하던 시절 보리는 가을 쌀 수확기까지 식구들의 생존을 책임지던 소중한 작물이었다. 보리 이삭이 하나하나 패어가는 모습은 그야말로 ‘배부른 풍경’이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청보리밭을 찾은 어르신들은 좀더 애틋한 표정으로 너른 보리밭을 바라본다. 각자 다른 이야기를 가지고 걷는 보리밭에서는 옛 추억과 새로운 추억이 보리이삭처럼 여문다.
보리밭의 신록은 4월을 지나 5월 초까지 이어진다. 수확이 가까워지는 5월 중순이 지나면 보리가 누렇게 익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 기간까지 고창에서는 청보리축제가 열린다. 올해는 다음달 10일까지가 행사기간이다. 이 시기 보리밭 일대에서는 다양한 부대행사도 펼쳐진다. 보리를 원료로 한 다양한 음식들도 맛볼 수 있다. 연인, 가족과 함께하는 축제는 보리밭과 함께 또 다른 추억이 될 것이다.
축제가 끝나고 6월이 되면 본격적인 수확의 계절이 온다. 보리가 결실을 맺은 그 자리는 거대한 해바라기밭으로 변신한다. 수천 송이의 해바라기꽃이 일제히 하늘을 올려다보며 자라는 광경은 절경이라고 한다. 10월 초에는 하얀 메밀꽃이 그 자리를 메운다.
고창=글·사진 서필웅 기자 seose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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