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수사는 검찰이 알아서 할 일이고, 당장 급한 것은 신임 총리 인선이다. 지금까지 지켜본 바로는 총리감을 구하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닌 모양이다. 아는 사람, 눈여겨봐둔 사람의 이름이 빼곡히 적힌 수첩은 덮어두고 시야를 넓혀 인재를 널리 구하라는 주문이 빗발치지만 얼마나 귀담아들을지 알 수 없다. 최선을 다하겠지만 여섯 번째 총리 후보자도 지금까지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정홍원 전 총리를 출국금지시켜놓고 다시 총리 자리에 앉혀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닐 것이다. 정 안 되겠으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에게 대연정을 제안했을 때처럼 팔 다리 하나 떼어주는 심정으로 총리지명권을 야당에 내주며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꾀하는 파격도 고려해봄직하지 않을까 싶다.
김기홍 논설실장 |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분석에 따르면 집권 2년을 마친 올 초 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 20개 분야 674개 가운데 완전이행이 37%, 부분이행이 35%, 미이행이 27%로 나타났다. 수치상으로만 보면 역대 정부에 비해 뒤처지지 않는다. 박근혜정부는 공약집과 별도로 집권 초에 4대 국정기조와 14대 추진전략으로 분류해놓은 140개 국정과제를 만들었다. 140개 과제는 ‘선택과 집중’ 전략 아래 지난해 38개로, 올해 다시 24개로 압축됐다. 노동·공공·금융·교육의 4대 부문 구조개혁이 골자다. 공무원연금개혁, 공공 부문 유사·중복 사업 통폐합, 국고보조금 개혁, 지방교부세 제도 개선,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지방교육재정 개혁, 국가 연구개발 효율화 등 대역사(大役事)라 할 만한 혁신과제들이 즐비하다. 성공하기만 하면 국가 시스템을 몇 단계 끌어올리고도 남는다.
적절한 온도와 습도에서 싹이 트듯 이들 과제도 여건이 충분히 뒷받침돼야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을 수 있다. 특히 추진력, 개혁 대상 설득, 정치적 지원, 세밀한 추진 전략 등 네 박자는 필수 요소다. 하지만 작금의 혁신 전략은 네 박자를 갖추지 못했다. 내년 4월 총선으로 무대를 옮길 친박 중심의 ‘시한부 각료’가 포진한 내각으론 추진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 개혁 의지부터 의심받고 있다. 개혁 대상인 공무원·노동계를 끌어들이지 못하고 있다. 눈치나 보는 야당의 ‘좁쌀 정치’가 발목을 잡고 있다. ‘선택과 집중’이 문어발식 추진으로 변질됐다. 이완구 총리가 뜬금없는 부패척결 담화 발표로 부메랑을 맞았다. 박 대통령은 “부정부패를 확실하게 뿌리 뽑는 정치 개혁”을, “사회의 적폐 해소와 사회 개혁”을 잇따라 외치며 혁신의 초점을 흐리고 있다. 때문에 혁신 과제들이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 박 대통령이 강조한 국가 혁신의 골든 타임이 속절없이 흐르고 있다. 의욕만 앞세운 결과다.
현오석 전 경제부총리가 ‘축구하는 아이들이 네 편 내 편 할 것 없이 공을 쫓아 우르르 몰려다니는’ 상황을 거론했다. “한 나라의 경제정책이 축구하는 아이들처럼 ‘눈앞의 이슈’만 허겁지겁 쫓아가선 안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지금의 국정 상황이 눈앞의 공만 보고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동네 골목축구를 빼닮았다. 지금까지 하던 방식을 고집하면 죽도 밥도 안 된다. ‘선택과 집중’ 전략, 새로 짜야 한다.
김기홍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