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같은 총장 공백 사태가 국민혈세로 지어진 국립대에서 빚어지고 있다. 하루 이틀이 아니다. 벌써 8∼15개월째다. 군사정권 때도 없었던 일이다. 사태 장기화로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대학 자율을 훼손하는 교육부의 ‘갑질’ 탓이다. ‘사태’는 좀처럼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참다 못해 대학 구성원과 동문 등이 나서 비정상적인 총장 임용을 정상화하라며 목청을 높이고 있지만 교육부는 꿈쩍을 하지 않는다. 사법부 판단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후보자를 다시 뽑으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문제가 무엇인지 밝히지 않고 당사자들의 명예 운운하면서. 이 때문에 ‘청와대 눈치보기’, ‘대학 길들이기’, ‘정권과 코드 맞추기’, ‘측근 챙기기’라는 의혹만 증폭되고 있다. 자업자득이다.
지역거점 국립대인 경북대는 지난해 두 차례 선거를 통해 김사열 교수 등을 총장 임용 후보자로 뽑아 교육부에 제청을 요구했다가 퇴짜를 맞았다. 이로 인해 함인석 총장이 지난해 8월 물러난 이후 지금까지 9개월째 수장 공백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1946년 개교 이래 처음이다. 총장 직무대리가 간신히 대학을 꾸려 가고 있는 형편이다. 직무대리도 벌써 3명째다. 학생들은 모두가 알게 모르게 피해를 보고 있다. 사상 처음으로 총장 없이 입학식이 진행됐다. 졸업생들에게도 ‘총장 직무대리’ 명의의 졸업장이 주어졌다.
이 대학만이 아니다. 공주대는 수장 공백 사태의 직격탄을 맞은 지 15개월째다. ‘뇌사 상태’나 다름없다. 지역을 대표하는 공주대의 명성과 자존심은 이미 커다란 상처를 입었다. 지역민들의 자존심도 상처를 입긴 마찬가지다. 지난해 3월 선거를 통해 총장 후보 1순위로 추천된 김현규 교수는 임용제청거부처분 취소판결을 얻어냈지만 교육부는 안하무인이다.
1972년 개교 이래 첫 모교 출신 총장을 기대했던 방송통신대도 마찬가지다. 방통대 1회 졸업생인 류수노 교수는 지난해 7월 총장 후보자로 선정됐지만 교육부가 임용 제청을 거부해 첫 방송대 출신 총장 배출은 중단된 상태다.
문준식 사회2부장 |
국립대 선진화라는 미명하에 총장간선제를 강요한 이명박정부에서도 대학이 뽑은 총장에 대해 교육부가 임용제청을 거부하는 일은 없었다. 유독 박근혜정부에서만 총장 임용제청 거부 사태가 빈발하고 있다. 최근 이들 3개대 교수회는 총장임용 제청거부 취소소송의 조속한 심리를 촉구하는 국민청원서를 대법원에 제출한 상태다. 그런데도 교육부는 대법원 판결과 관계없이 총장 재추천을 요구할 방침이라며 겁박한다. “행정 절차상 대학 구성원은 총장 후보를 추천하는 단계까지이고, 교육부 장관은 임용제청 여부, 대통령은 임용 권한이 있다”면서 임용제청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는 교육부의 고유권한이라며.
교육부의 ‘입맛’에 맞지 않는 후보가 선출될 경우 수장 공백 사태는 이들 대학만이 아니라 전체 국립대로 확대될 수 있다. 국립대 총장 선출은 오는 12월 현 총장의 임기가 끝나는 경상대를 시작으로 줄줄이 예정돼 있다. 교육부는 결자해지 차원에서 하루속히 ‘사태’를 해결하기 바란다. 그러지 않으면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을 것이다.
문준식 사회2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