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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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근로자 21만명 ‘불임 공포’ 떤다

국내 2만여개 사업장 생식독성물질 노출 드러나…인쇄·車수리·전자 업종 집중… 4만명 ‘위험군’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일했던 김모씨는 작업환경으로 불임이 됐다며 2013년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 신청을 했다. 이는 반도체 공장의 여성 근로자가 ‘생식독성’ 문제를 제기한 첫 사례였다.

생식독성이란 특정 화학물질이 생리불순과 무정자증, 불임, 유산, 자녀 기형, 암 등의 생식기관 질환을 유발하는 것이다.

해외에서는 작업환경에 의한 생식독성 사례가 종종 보고된다. 불가리아의 배터리 공장과 미국 미주리주의 납 광산, 스웨덴의 유기용매 취급사업장 근로자에게서 무정자증과 불임이 발생했다는 보고가 대표적이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7일 국내 2만96개 사업장의 21만5335명이 생식독성물질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특히 4824개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3만9659명은 생식독성물질이 노출기준의 10% 이상 측정된 ‘위험군’에 포함됐다.

연구원은 국내 근로자의 생식독성물질 노출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2013년 작업환경측정결과와 2009년 전국 산업체 작업환경실태 일제조사에서 생식독성물질과 관련된 변수만 뽑아 분석했다.

연구팀이 2013년 자료를 토대로 위험군이 속한 업종을 분석한 결과 기타 인쇄업이 9.2%로 가장 많았고, 자동차 종합수리업과 도장 및 기타 피막처리업, 기타 전자부품 제조업이 뒤를 이었다. 위험군이 주로 노출되는 생식독성물질은 생식독성 1A(생식독성이 인간에게 확인)로 분류된 납과 일산화탄소, 1B(생식독성이 동물시험으로 확인)로 분류된 2-에톡시(메톡시)에탄올, 2(생식독성을 의심할 만한 증거 있음)로 분류된 톨루엔 등 11종이었다. 이 물질들은 용접이나 도장, 용매, 접착, 혼합 등의 과정에 이용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작업환경측정결과 노출기준을 평균 2배 정도 초과한 초고위험 사업장도 75개소에 달했다. 선박 구성부분품 제조업(10.4%)과 기타 인쇄업(8.1%)이 그런 사업장이었다.

연구팀이 2009년 조사를 분석한 결과에서는 생식독성물질을 취급하는 사업장의 90%가 10인 미만의 영세사업장이었다. 생식독성물질을 8종 중복 취급하는 사업장 2개소를 포함해 2종 이상을 취급하는 곳이 전체의 17%에 달했다.

이종란 노무사는 “우리는 이제야 생식독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한 상황”이라며 “화학물질에 의한 생식독성의 인과관계를 밝히기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세종=윤지희 기자 phhi@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