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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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너의 장중한 선율… 5월의 무대 물들이다

서울시향 20일 ‘발퀴레’ 전막 국내 초연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지난해 첫발을 뗀 ‘반지 원정대’의 두 번째 도전에 나선다. 20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바그너 악극 ‘니벨룽의 반지’ 중 2부 ‘발퀴레’를 공연한다. 국내 교향악단이 ‘발퀴레’ 전막을 공연하기는 처음이다. 방대한 작품 규모, 이탈리아 오페라에 치우쳐온 국내 성악 환경, ‘니벨룽의 반지’ 연주·지휘 경험을 가진 음악인의 부재, 바그너는 어렵다는 인상이 맞물리다 보니 이 작품을 좀처럼 국내에서 만나기가 어려웠다. 니벨룽의 반지는 연주 시간이 17시간에 달하는 대작이다. 이 중 발퀴레는 4시간 가까이 된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이 20일 국내 교향악단 중 처음으로 바그너 ‘니벨룽의 반지’ 중 ‘발퀴레’ 전막 연주에 나선다. 연주 시간만 약 4시간에 달해 공연은 평소보다 1시간 빠른 7시에 시작한다. 사진은 지난해 서울시향의 ‘라인의 황금’ 공연 모습.
서울시향 제공
◆수준급 성악진 참여…반지 시리즈 잇는다


니벨룽의 반지는 황금 반지를 둘러싼 장엄한 투쟁과 몰락을 그린 음악극이다. 발퀴레에서는 보탄 신의 딸 브륀힐데가 지그문트를 도운 벌로 바위산에 잠들기까지 이야기가 전개된다. 서정원 음악칼럼니스트는 “바그너 정식 오페라 10개 중에서도 ‘반지’는 실험적이고 독특한 작품”이라며 “4부 ‘신들의 황혼’에서 작은 합창을 제외하면 합창이 아예 없고 후렴처럼 반복되는 노래도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 작품은 바그너가 생각한 극과 음악의 완벽한 결합이라는 오페라의 이상을 극단으로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이번 공연은 오페라 콘서트로, 오페라 무대와 연기 없이 음악만 올려진다. 서울시향은 지난해 9월 니벨룽의 반지 중 서곡에 해당하는 ‘라인의 황금’을 같은 식으로 공연했다. 후기 낭만주의 악극인 만큼 교향악단 덩치도 대규모다. 무대에 서는 오케스트라 인원은 112명. 이 중 호른 9명을 포함해 금관 연주자가 18명에 이른다. 하프는 6대가 동원된다. 일반적인 교향곡의 금관 연주자는 8∼10명선이다.

성악진 역시 수준급으로 캐스팅됐다. 지그문트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바이로이트·잘츠부르크 축제 등을 누빈 바그너 전문테너 사이먼 오닐이 연기한다. 브륀힐데는 이름가르트 빌스마이어, 보탄은 에길스 실린스가 맡았다.

이용숙 오페라 평론가는 “오닐은 세계적으로 몇 안 되는 바그너 영웅 테너로 미성이면서도 빛나고 단단한 소리를 지닌 대단한 성악가”라며 “브륀힐데 역할 역시 바그너 전문 성악가이고 아홉 명의 발퀴레를 맡은 성악가들도 쟁쟁하다”고 설명했다.

◆유도동기 기억… 관현악에 귀 기울여야

발퀴레는 반지 4부작 중 많은 이들이 선호하는 작품이다. 공연 시간은 길지만 이야기 자체의 재미가 있는 데다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선율이 다수 나온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관객이 4시간 동안 길을 잃지 않으려면 준비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우선 관현악에 집중해야 한다. 이탈리아 오페라에서 관현악이 주로 보조 역할에 머무는 것과 달리 바그너는 관현악과 성악에 대등한 비중을 두고 있다. 이용숙 평론가는 “이탈리아 오페라는 선율로 주인공의 심리와 상태를 표현하지만 바그너는 관현악이 무엇을 말하는지 새겨 들어야 한다”며 “과거 오페라를 보던 대로 성악가만 바라보며 선율을 따라가면 지루할 것”이라고 말했다. 각 상황·인물을 상징하는 음악적 주제인 유도 동기(라이트모티브)를 기억하는 것도 중요하다. 유형종 오페라 평론가는 “바그너는 유도 동기에 익숙해져야 재미있다”며 “독일 오페라는 가사도 자세히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국내 악단 발퀴레 전곡 이제야 첫 연주

이번 공연은 국내 악단의 발퀴레 전막 초연이라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다. 국내에서 바그너 오페라가 전막으로 공연된 적은 열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드물다. 수요가 적었던 것이 한 이유다. 열렬한 애호층은 있지만 한국바그너협회가 이제 22년이 됐을 만큼 저변이 넓지 않다. 인간 바그너에 대한 호불호나 바그너는 부담스럽다는 심리적 장벽도 존재했다. 이는 ‘바그너 공연을 얼마나 보러 오겠는가’하는 의구심으로 이어졌다.

국내 성악 환경이 이탈리아 오페라에 특화된 것도 한 요인이다. 바그너 전문 성악가가 성장할 기회가 적었다. 바그너 오페라는 정확한 독일어 구사와 관현악 소리를 뚫을 큰 성량이 필요하다. 이용숙 평론가는 “유럽에서도 베르디·푸치니에 비해 바그너 공연이 많지 않기에 독일에서 유학하더라도 바그너를 불러볼 기회가 적다”고 전했다.

다만 이번에 오페라가 아닌 콘서트 형식으로 올려지는 데 대한 아쉬움의 목소리도 있다. 유형종 평론가는 “연출이 빠진 바그너 오페라는 한계가 있는 만큼 오페라단에서 언젠가 오페라 공연에 도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립오페라단은 지난해 니벨룽의 반지 4부작을 시작할 계획이었으나 준비 부족으로 미뤄졌다. 대신 올 하반기 바그너의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을 선보인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