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문제다. 더 깊이 들어가면 리더십의 문제고, 더 세부적으로 보면 위기관리 능력의 문제다. 박근혜 의원은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전 후 조용히 물러나 있었다. 모든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어서 때가 무르익어야 한다. 당은 친박(박근혜)과 친이(이명박)로 갈려 공방전을 벌였지만 결국 그에게 비상대권을 부여했다. 그가 섣불리 나섰다면 당은 지리멸렬해지고 사분오열됐을지도 모른다. 그는 독재권을 쥐자 당을 확 바꾸었다. 20대 청년과 진보진영 학자를 서슴없이 당 지도부에 모시고 경제민주화와 복지확대를 과감하게 내세웠다.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꾼 것도 모자라 당 상징색을 파란색에서 빨간색으로 바꾼 것은 압권이었다. 혁신이 뭔지를 보여준 것이다.
백영철 논설위원 |
4·29 재보선에서 영패한 것은 실패의 기록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설명과 설득이 불가능했던 것은 아니다. 작은 전투는 져도 결정적인 전투에서 이기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급하게 굴면서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선거 다음날 해 뜨자마자 “국민은 패배하지 않았다”는 성명을 발표한 것은 잘못이다. 건의한 참모가 있다면 읍참마속해야 한다. 패장으로서 먼저 자숙하고 재신임 절차라도 밟아야 했다. 혼자 살아선 리더가 아니다. 희생하고 생사고락을 같이 할 것이라는 믿음을 심어줘야 리더다운 행동인 것이다.
제1야당은 지금 당연히 소란스러워야 한다. 당이 쪼개질 정도로 격한 토론을 벌이는 것도 미래를 위해서는 나쁘지 않다. 그러나 잘되는 집의 꼴이 아니다. 오합지졸처럼 서로에게 총질하느라 혈안이다. 이럴 때 리더십이 의미를 가지려면 중심을 잡고 한 방향으로 수렴할 수 있어야 한다. 토론이 끝나 “이제 뭉치자”라고 할 때까지 참고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 넓은 밭에서 풀을 맬 때는 발바닥을 봐야지 밭의 끝을 봐서는 힘만 든다. 만선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선 그물부터 기워야 한다. 모든 일은 순서가 있다. 이치가 이런데도 반대파들을 공천권을 두고 장난치는 집단으로 매도하는 성명서는 또 뭔가. 친노패권주의가 문제의 모두가 아니다. 위기관리 리더십의 부재가 문제의 본질이다.
버림의 철학 없이 큰 지도자가 되기 어렵다. 주먹을 꽉 쥔 채 다른 사람을 끌어안을 수는 없는 것이다. 문 대표가 내년 총선 공천권에 왜 그렇게 집착하는지 모르겠다. 투명한 공천 시스템에 맡기면 될 텐데 말이다. 혁신위원장 자리도 전권을 주지 않고서야 누가 들러리를 서겠는가. 지도자는 실패에서 살 길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형세가 불리할 때 장수의 가치가 빛나는 법이다. 문 대표가 되새겨야 할 금언이다.
백영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