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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홍 논설실장 |
우리 사회는 지난해 세월호 비극을 겪으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주는 책임 있는 국가 또는 정부’에 대해 비로소 눈을 떴다. 세월호 석 달여 뒤 개봉돼 역대 한국영화 최다 관객 수를 갈아치운 ‘명량’을 보면서 세월호 참사 때 목격했던 무력한 국가, 무능한 정부를 다시 떠올리며 치를 떨었다. 그 뒤로 셀 수 없이 많았던 다짐과 약속에도 불구하고 독감 수준의 질병 때문에 똑같은 무기력과 무능을 일년 가까이 지나 또다시 보는 것은 참으로 괴로운 일이다.
메르스 사태는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종류의 위기라 할 만하다. 바이러스에 놀라고 공포에 떠는 작금의 상황은 정상이 아니다. 한강의 기적, 금모으기 운동 같은 빛나는 고난 극복의 역사로 국제사회의 칭송에 익숙해진 우리가 이제 와 외국인들에게 웃음거리가 되는 것은 더욱 참을 수 없는 일이다. 초기 대응 실패, 부실한 방역체계로 메르스 확산을 막지 못한 정부의 무능에 일차적인 책임을 물어야 하겠지만 이번 위기를 헤쳐나가는 일은 정부만의 몫이 아니다. 사회 전체가 그 책임을 나눠 가져야 한다. 의심 환자가 외국을 들락거리고 골프를 치러 다니고 허위사실과 괴담을 퍼나르며 메르스 치유를 방해하고 혼란을 조장하는 것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기본 책무를 저버린 것이다.
우리가 특히 주목해야 하는 것은 메르스라는 질병이 아니라 공포다. 메르스보다 공포가 훨씬 빠르게 퍼지고 있다. 메르스보다 근거 없는 공포로 인한 혼란과 고통이 훨씬 크다. 메르스 퇴치보다 공포와 싸우는 일이 더 중요해졌다. 하지만 그 공포는 우리 스스로 만들어낸 유령일 뿐이다. 질병을 견뎌내는 것은 사람의 몸이지만 공포를 이겨내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다. 담대한 자세와 결연한 의지다. 사회의 안녕을 오로지 정부에만 의존하는 시대는 지났다. 선진 시민사회는 시민 스스로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일에 적극 나서는 방향으로 이미 저만치 달려가고 있다. 메르스 위기에 맞서는 대한민국의 역량을 보여줄 좋은 기회다. 국가의 역량은 시민 역량과 정부 역량의 총합이다.
김기홍 논설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