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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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환의 월드줌人] '우리는 사촌에서 모녀가 되었습니다'

“이로써 두 사람이 정식으로 모녀(母女)가 되었음을 선언합니다. 축하합니다”

지난 9일(현지시간), 미국 댈러스 가정법원에 판사의 말이 울려 퍼지는 순간 뮤리엘 클레이튼(92·여)과 메리 스미스(76·여)는 서로를 따뜻하게 안았다. 통상 가정법원에서 입양 판결이 내려질 경우 판사는 아이에게 곰인형을 선물하지만, 이날 재판을 맡은 쿡 판사는 두 사람에게 인형 대신 난초를 건넸다.


정식으로 모녀 관계를 인정받은 클레이튼과 스미스는 사실 사촌이다. 클레이튼의 엄마와 스미스의 아빠는 서로 남매사이다. 쉽게 말하면 클레이튼이 외삼촌의 딸을 자기 자식으로 맞이했다는 뜻이다. 사촌에서 모녀로 변한 두 사람에게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이야기는 195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클레이튼은 갓 결혼한 새댁이었으며, 스미스는 아직 부모님의 보살핌이 필요한 11살 소녀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스미스의 아빠는 45세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으며, 그의 엄마는 정신질환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한 상태였다. 가족 중 누구도 스미스를 돌볼 사람이 없었다.

스미스의 엄마는 딸을 보살피려 노력했다. 그러나 정신병원에 있는 환자가 딸을 양육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스미스는 “우리 엄마는 굉장히 다정한 분이었어요”라며 “그러나 안타깝게도 엄마는 저와 다른 세상에 사는 분이었어요”라고 과거를 회상했다.

오갈 데 없는 사촌동생을 안타깝게 여긴 클레이튼이 스미스에게 “같이 살자”고 말했다. 물론 이때는 단지 어린 동생을 대신 돌보려는 생각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미 클레이튼에게는 딸이 넷이나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스미스는 열네 살, 클레이튼은 서른 살이었다.

그러나 클레이튼은 스미스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가 낳은 친딸처럼 스미스를 돌봤고, 부모의 손길이 필요했던 스미스는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주는 클레이튼을 누구보다도 잘 따랐다.

“하루하루가 시끌벅적했어요. 여자아이 다섯명이 한꺼번에 화장실에 들어간다고 생각해보세요. 뭐가 제대로 돌아가겠어요” 클레이튼이 웃으며 말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클레이튼은 스미스를 자기 딸로 삼고 싶다는 생각을 조금씩 하기 시작했다. 스미스의 불쌍한 처지를 생각하면 그를 내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미스의 엄마가 정신병원에 있었기 때문에 그를 양딸로 받아들이는 건 양심을 어기는 행동이라 생각해 절대 말을 꺼내지 않았다.

스미스의 엄마 즉, 클레이튼의 외숙모는 몇 년 전 7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평생 딸을 품에 제대로 안아보지도 못하고 정신병원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한 것이다.

그때야 비로소 클레이튼은 스미스에게 자신이 엄마가 되어주고 싶다는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낼 수 있었다. 다행히 스미스도 그의 말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클레이튼이 입양 이야기를 꺼냈던 때는 미국의 ‘어머니 날’이었다. 두 사람이 사촌에서 모녀가 된 건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스미스는 “엄마가 되어주겠다는 클레이튼의 말을 들은 순간 정말로 놀랐다”며 “이는 당황스러움이 아닌 ‘행복의 놀람’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때만큼 내 인생을 달콤하게 했던 말은 없었다”고 덧붙였다.

클레이튼은 스미스 입양을 가리켜 ‘퍼즐의 완성’이라 정의했다.

클레이튼은 “인생은 퍼즐을 완성해 나가는 것이다”라며 “내 인생의 퍼즐을 완성하려면 마지막 한 조각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야 마지막 조각을 끼워 넣음으로써 인생을 완성할 수 있었다”며 “그 마지막 조각은 바로 ‘스미스’다”라고 기뻐했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사진=미국 댈러스모닝뉴스 영상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