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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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DNA로 혼을 빚고 세태를 비틀다

해외 활동 두 조각가 국내서 회고·개인전
한국문화의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아르헨티나에 거주하며 작업하고 있는 원로조각가 김윤신(80)은 남미지역에서는 특별한 존재다. 먹고살기 위해 이민지로 선택된 땅에서 돈벌이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남미 한인사회의 문화적 자존심이다. 한국인이 돈벌레가 아닌 문화적 유전자를 가진 민족임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2008년 10월에는 사재를 털어 남미 최초의 한국인 작가 미술관인 김윤신미술관(관장 김란)을 부에노스아이레스시에 개관했다. 중견 조각가 성동훈(47)은 돈키호테 작가답게 대만 인도 중국 등에 ‘돌진’하며 작업하고 있는 작가다. 두 작가가 거의 동시에 국내전을 열고 있다.


30여년 전 조각재료인 나무와 돌에 매료돼 교수직을 버리고 아르헨티나에 정착한 김윤신 작가는 7월 8일까지 서초구 한원미술관에서 회고전을 갖는다. 그는 김정숙, 윤영자와 더불어 여성조각가 1세대에 속하는 작가다. 김구 선생을 보좌했던 독립군 출신 2성 장군인 김국주 전 광복회장이 그의 친오빠다.

“어머니는 늘상 외아들인 오빠가 객지에서 무사하기를 기원하셨습니다. 돌을 주워다 쌓거나 뒷산 샘물에서 길어온 정안수 앞에서 새벽 촛불 정성을 들이는 모습을 보고 자랐어요.”

그의 작품 주제가 ‘기원’이 된 이유다. 토템적 요소도 같은 맥락이다. 무념무상의 단계에서 그는 작업에 들어가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연장마저 몸의 일부가 되고, 잘려나간 단면과 그 속에서 형성된 다양한 선들이 하나의 조화를 이루면서 작품이 된다.

인간의 원초적 모습인 ‘기원’을 형상화한 김윤신의 나무조각.
“이성적 판단에 얽매인 그 어떤 통제나 미학적 선입견 없이 절대적 절단의 단면이 수직, 수평도 아닌 비스듬한 대각선을 이루면서 하늘에 닿고자 하는 기원을 표현했다.”

그는 매순간 절대자와 대화를 나누듯이 삼라만상과 합일을 추구한다. 합일이 우주의 속성이라 했다. (02)599-5642

7월 12일까지 사비나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갖는 성동훈 작가는 진정성이 사라지고 있는 세태를 ‘가짜 왕국’으로 풍자하고 있다. 본질적인 문제의식보다는 표피적인 사유에 그쳐 버리는 시대의 모순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다. 방식은 ‘산파술’로 불리는 소크라테스 대화법을 차용하고 있다.

가짜 욕망에 매몰된 현대인을 풍자한 성동훈의 ‘코뿔소의 가짜 왕국’.
“무지한 상태로 위장하여 질문을 던져 깨닫게 하는 방법이지요.”

그가 대만 철강회사에서 구한 철 슬러지를 활용해 만든 조각작품들은 현무암 또는 기암괴석 같기도 하다. 인도에서 제작한 소품들은 힌두, 이슬람, 시크, 자이나 등 인도에 존재하는 다양한 종교적 형상들이 재조합됐다. 동물의 형상으로 제작한 후 가짜 금도금까지 했다.

“모순과 위장이 난무하는 상황을 풍자하고 싶었습니다.”

그의 작품 ‘코뿔소의 가짜 왕국’은 코뿔소 몸통에 머리는 청화백자 구슬로 박았다. 그 위에 올라탄 사람 형상의 몸통은 전투기 부품이고, 머리는 보라색 플라스틱 구슬로 처리했다. 과학의 결정체이면서도 생명력을 다한 비행기 잔해(몸), 아름답지만 가짜인 구슬(머리)로 이뤄진 인간은 ‘가짜 욕망에 시달리고 지친 현대인의 자화상’이다. 동화 등에서 볼 수 있는 의인화를 통한 인간사 풍자다. (02)736-4371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