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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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교회 난사 희생자 유족들의 ‘아픈 용서’

흑백 인종 갈등 우려 차단 나서, 용의자 루프 화상 약식재판 참석
“모두 친절해 범행 멈출까 생각”
미국에서 흑인 교회를 상대로 한 백인 청년의 총기난사 사건으로 인종 갈등에 대한 우려가 큰 가운데 피해자 가족이 범인을 용서한다는 뜻을 밝혔다.

20일(현지시간) 미 언론에 따르면 이번 사건을 저지른 딜란 루프(21)가 전날 보석 여부를 판단하는 화상 약식재판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의 흑인 교회에서 총기를 난사해 9명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찰스턴 카운티 감옥에서 화상으로 재판을 받은 그는 판사가 나이와 주소 등 신원을 묻는 질문에 짤막하게 답했다.

희생자 가족은 슬픔과 분노를 감추지 못하면서도 대체로 루프를 용서한다고 했다. 희생자 에델 랜스의 딸은 “엄마를 다시 안을 수 없게 됐다. 그러나 당신을 용서한다. 당신의 영혼에 자비가 있기를 바란다”며 “당신은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줬지만 하나님은 당신을 용서한다”고 말했다.

희생자 티완자 샌더스의 어머니도 “몸이 아프지 않은 데가 없다”면서도 “하나님의 자비가 있길 바란다”고 했다. 또 다른 희생자 가족인 앤서니 톰슨은 “나도, 내 가족도 당신을 용서한다”며 “당신이 회개하길 바란다. 회개한다면 당신은 더 나은 인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 연방 사법당국은 루프를 ‘증오 범죄 및 국내 테러’등 혐의로 수사 중이다.

에밀리 피어스 법무부 대변인은 언론에 “이 가슴 아픈 사건은 공동체에 공포와 두려움을 불러일으켰다”며 “법무부는 이 범죄를 증오 범죄와 국내 테러 행위 가능성을 포함한 모든 각도에서 살펴보고 있다”고 밝혔다.

루프가 만든 것으로 보이는 웹 사이트에서는 선언문 성격의 문서가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문서는 백인 우월주의를 조장하는 내용의 2400여 단어 분량으로 돼 있다. 사이트에는 루프가 88이 적힌 티셔츠를 입고 찍은 사진도 있다고 미국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88은 H가 알파벳 순서에서 8번째란 사실에 착안해 만든 용어로, ‘Heil Hitler’(히틀러 만세)를 뜻한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루프가 희생된 교인들의 친절함 탓에 계획한 범행을 멈출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고 보도했다. 루프는 기소되기 전 경찰에게 “교회에 있던 모든 사람이 친절함을 베풀어 범행을 하지 않을 뻔했으나 임무를 완수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박희준 특파원 july1st@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