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보기메뉴 보기 검색

[나의 해방 70년] 안휘준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

입력 :
수정 :
폰트 크게 폰트 작게
[광복·분단 70년, 대한민국 다시 하나로] “일본 내 한국문화재 6만7000점… 환수위해 실태파악 급선무”
1945년 8월, 한국 사회는 광복의 기쁨과 함께 일제강점 35년의 그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과제와 마주했다. 그것은 일제 잔재를 극복하는 것이며 식민 상태에서는 불가능했던 우리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작업이었다. 문화재계로 말하면 일제 관학자들이 식민사관에 입각해 왜곡한 미술사를 바로잡고, 우리의 관점으로 문화재를 연구하고 판단해 문화적 우수성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약탈된 문화재의 환수도 추진해야 했다.

“식민사관에 찌든 일제 학자들은 우리 미술을 순수하게 보질 않았다. 그래서 (미술사 1세대 학자들인) 고유섭, 김재원 같은 분들이 너무 소중하다. 일본에 있는 한국 문화재의 환수를 위해서는 언제 어떤 식으로 유출되었는지, 지금 어디에 어떻게 보관되어 있는지 등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데 아직 첩첩산중이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안휘준 이사장의 말이다. 그는 광복 후 70년 한국 문화재계가 걸어온 길을 직간접으로 경험한 원로학자다. 한국 미술사학계의 1세대로 꼽히는 학자들에게서 배우며 그들의 활동을 지켜봤고, 회화 분야에서는 개척자 역할을 했다. 2012년 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한 이후에는 일본을 비롯한 해외 각국에 있는 한국 문화재의 실태 파악과 환수에 힘을 쏟고 있다. 지난 17일 서울 중구 재단 사무실에서 안 이사장을 만났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안휘준 이사장이 지난 17일 서울 중구 재단 사무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광복 후 70년간 한국 미술사학계의 동향과 과제, 일제강점기에 해외로 유출된 한국 문화재 환수 문제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서상배 선임기자
―일제강점기 한국 미술사 연구는 어떤 내용이었나.


“조선총독부를 중심으로 고고학 발굴을 기초로 한 미술사 연구가 있었다. ‘고고학적 미술사’라고 한다. 식민사관에 찌든 사람들이라 우리 미술을 순수하게 보지 않고 깎아내리고 폄하하는 입장에서 미술사를 썼다. 방법론 측면에서 보면 굉장히 미숙해 무시해도 괜찮은 수준이었다. 다만 자료 집성은 지금도 참고할 만하다.”

―광복 후 우리 학자들의 연구는.

“광복 1년 전에 돌아가신 고유섭 선생을 빼놓을 수 없다. 선생이 없어서 광복 이후 미술사가 학계에서 자리를 바로잡지 못하고 늦게 출발한 측면이 있다. ‘조선탑파의 연구’는 지금 관점에서 봐도 방법론이나 연구 수준이 상당한 경지다. 고 선생을 사숙한 황수영, 진홍섭, 최순우 선생 등과 그들의 제자들이 국내 미술사학계의 한 계보를 이룬다. (초대 국립박물관장을 지낸) 김재원 선생은 한국 박물관의 기초를 다졌다. 김원룡 선생이 없었다면 우리나라 고고학이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미술사학계의 또 다른 계보가 두 선생으로부터 시작된다.”

안휘준 이사장은 고유섭(왼쪽) 선생, 김재원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을 한국 미술사학계의 토대를 닦은 학자로 꼽았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안 이사장이 언급한 이들은 광복 후 한국 미술사학의 기틀을 잡았다. 불상·불탑·사경·도자기 등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고, 문화재를 보존·활용하는 박물관 시스템이 자리를 잡아갔다. 그러나 안 이사장이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한 1960년대 말까지도 회화 분야는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공부의 기초가 되는 자료, 앞선 연구 업적이 거의 없어서 참 난감했다. 자료를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는 다른 분야에 비해 회화는 소장처의 협조를 구해야 하기 때문에 연구가 부족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정선과 김홍도 같은 대가들이 있어서 조선 후기의 회화는 기본적인 것은 소개된 상태이긴 했지만, 조선 초·중기 회화에 대해서는 깜깜했다. 초기 단계의 회화를 연구해야 다음 단계로 쉽게 이어질 것 같아 초기 회화를 공략했다.” 

젊은 시절의 안휘준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이 일본소장가와 이야기를 나누며 메모를 하고 있다.
안휘준 이사장 제공
―한·중·일 3국의 회화 교섭사 연구에도 매달렸는데.


“우리 미술을 객관적으로 알려면 중국, 일본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중국과의 관계, 수입된 것의 자기화 문제, 일본에 준 영향 등을 살펴보게 됐다. 중국에서 미술 수입은 우리의 기호, 미의식에 맞춰서 적극적이고 주체적으로 진행됐다. 수입한 이후에는 우리 것으로 재창출했다. 그것을 일본에 전한 것이다. 일본은 우리를 중국 미술의 단순한 전달자라고 하지만 그게 아니다.”

이런 논리는 대개 일본 문화에 대한 한국 문화의 우수성으로 귀결된다. 하지만 안 이사장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한·중·일 우등생론’을 이야기했다. 함부로 일본 문화를 깔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동북아 3국이 만들어가야 할 관계에 대한 나름의 구상처럼 들리기도 했다.

“중국, 한국의 영향을 받기는 했지만 일본은 누가 봐도 그들의 냄새가 풀풀 풍기는 미술을 발전시켰다. 인정해야 한다. 한·중·일 3국은 1·2·3 등을 나눠 가진 우등생 같은 나라들이다. 2·3등도 언제나 1등을 할 수 있는 대등한 우수성을 가진 나라들이다. 일본에 대해서는 ‘너희가 우리에게 영향을 받았으니 열등하다’가 아니라 ‘너희가 발전시킨 훌륭한 문화는 우리가 있어 가능했다는 건 틀림없지 않으냐’라고 해야 한다. 이런 부분을 제대로 안다면 일본 정치권이 지금처럼 오만방자한 태도를 가질 수는 없다.”

인터뷰는 일본에 있는 한국 문화재의 환수 문제로 이어졌다. 50년 전 한일협정이 체결됐다. 당시 문화재 협정이 같이 맺어져 1432점의 한국 문화재가 반환됐다. 그러나 일본은 여전히 한국 문화재를 가장 많이 가진 나라다. 이 중 일제강점기에 약탈한 게 상당수다. 문화재 환수 분야에서 풀어야 할 과제가 가장 많은 나라라는 의미다. 

안휘준 이사장이 초상화 한 점을 살펴보며 설명하고 있다.
안휘준 이사장 제공
―1965년의 문화재 협정을 어떻게 평가하나.


“협정 체결로 돌아온 문화재를 보고 당시 김원룡 선생은 ‘회담에 참석했던 문화재 전문가들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어야 했다’고 말했다. 기대에 너무 못 미쳤던 것이다. 당시 협상 실무자들을 탓하기만 할 수 없는 사정도 있었다. 한일협정은 경제 발전을 위해 일본 돈을 끌어들이는 게 큰 목적이었다. 문화재 환수 문제에 매달려 회담을 지연시킬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그런 시대적 한계가 있었다.”

―일본은 환수 문제가 문화재 협정으로 일단락되었다고 주장하고, 우리는 일본 정부의 노력을 규정하고 있다며 맞서고 있다.

“합의사항이 구체적이지 못했던 부분이 있지만, 일본이 주장하는 것처럼 문화재 협정으로 환수 문제가 마무리되었다는 구절은 어디에도 없다. 두루뭉술하게 마무리돼 여전히 남겨진 숙제다. 상당한 기간 양국의 대화가 불가피하다.”

안휘준 이사장이 ‘기미년 명 순흥읍내리 벽화고분’을 조사하고 있다.
안휘준 이사장 제공
―일본 내 한국 문화재 환수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하나.

“해외 소재 문화재는 16만점 정도이고 이 중 6만7000여점(42%)이 일본에 있다. 드러나지 않은 것은 이보다 더 많다. 문화재의 실태 파악이 우선이다. 언제 어떻게 나갔고, 일본 내의 이동 경로는 무엇인지 등을 알아야 한다. 앞으로 할 일이 너무 많다.”

―국외소재 문화재는 약탈된 것이라는 인식이 강한데.

“잘못된 생각이다. 약탈 문화재가 많기는 하지만 친선의 목적으로 나간 것도 상당수다. 약탈 문화재라고 해서 무조건 환수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국내에 비슷한 문화재가 이미 있고, 현지에서 우리의 역사·문화를 소개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곳에서 활용하는 게 환수 못지않게 중요하다.”

문화재 환수는 정부 간 협상·구매·영구기탁 등의 다양한 방식이 있지만, 가장 바람직한 형태는 기증이다. 있어야 할 곳에 있을 때 문화재가 가장 가치를 발한다는 사실에 대한 자각에서 비롯되는 선의다. 가장 바람직한 환수 사례를 꼽아 달라는 질문에 안 이사장이 꼽은 것도 기증이었다.

“이우치 이사오의 와전 컬렉션 기증이다. 일제강점기에 이토 쇼베라는 사람이 수집한 것을 구매해 소장하다 1988년과 2005년에 국립중앙박물관, 유금와당박물관에 인도했다. 올해 재단에서 이우치 컬렉션 일부로 전시회를 열고 심포지엄도 열어 그 가치를 재조명하는 작업을 하려 한다. 앞서 재단에서 소개했던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의 정선화첩 기증, 일본 데라우치 문고의 반환도 좋은 사례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 안휘준 이사장은… 1940년 충북 진천에서 출생하여 서울대 고고인류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홍익대 미술대 교수, 문화재위원회 위원, 한국미술사학회 회장,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등을 지낸 한국 미술사학계의 대표적인 학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