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아줌마야?”
“놀이터에서 가끔 보는 이모야.”
나는 ‘아줌마’냐고 물었고, 딸은 ‘이모’라고 대답했다. 놀이터라는 곳을, 더 정확히는 놀이터에서 맺어지는 어른과 아이의 관계가 흥미로워진 건 그때부터였다. 놀이터는 분명 어른과 아이 사이에 오가는 살뜰함, 친밀감의 정도가 특별히 높은 곳이다.
3개월여 관찰에 따르면 놀이터에서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호감과 관심을 표시하는 데 적극적이다. 이름이 뭔지, 몇 학년인지, 내 아이와는 어떻게 알게 된 건지 등을 꼬치꼬치 묻는다. 예쁘다, 씩씩하다, 의젓하다 등 의례적인 수식어도 남발(?)하는 경향이 있다. 때로 보호자를 자처하기도 한다.
강구열 문화부 기자 |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어른들을 그다지 경계하지 않는 것은 어른들의 이런 태도 때문이 아닌가 짐작한다. 지난 토요일 저녁 아들과 야구를 하고 있는데, 재밌어 보였는지 처음 보는 아이가 다가와서는 같이 하면 안 되느냐고 해 1시간 넘게 함께 놀았다. 나와 안면을 튼 아이 친구들의 태도가 또 재밌다. 다른 곳에서는 쑥스럽게 인사하거나, 아예 무시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놀이터에서 만나면 아이스크림을 사달라느니, 그네를 밀어달라느니 스스럼이 없다.
왜일까. 놀이터의 아이들은 대개 내 아이와 소속집단이 비슷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라는 게 나름의 결론이다. 학교와 동네는 물론 학원에서도 언젠가는 마주칠 개연성이 높은 아이들이 놀이터에 모인다. 내 아이의 잠정적인 친구 혹은 동료인 셈이니 너그러워지고, 다정해지는 게 쉽지 않나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의 속내야 알 길이 없지만, 나의 경우에는 그렇다.
세상이 험하다. 아이들을 맘놓고 내놓기가 두려워지는 일들을 종종 경험한다. ‘처음 보는 어른의 선의 혹은 부탁’은 유괴의 가능성일 수 있다고 가르쳐야 하는 게 우리가 아이들을 키우는 현실이다. 부모 각자의 노력만으로 안전하고, 건강하게 아이들을 키울 세상은 이미 아닌 것 같아 답답하다. 어린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들 대부분이 비슷한 심정일 것이다.
놀이터에서 어른과 아이 사이에 오가는 선의, 관심, 친밀함의 관계가 내 눈에는 소박한 형태의 ‘공동 육아’로 보인다. 그것이 따지고 보면 내 아이를 중심에 둔 이기심의 발로일 수 있지만, 어른이나 아이나 즐겁고, 안심한다면 반가운 일이지 싶다. 그래서 놀이터에서의 ‘공동 육아’가 사회 곳곳으로 확산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강구열 문화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