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는 첫 번째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다음 날인 지난 5월21일부터 메르스 공식 브리핑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44일 동안 거의 매일 기자회견을 열었다. 회견은 늘 사망자 숫자를 알리는 문장으로 시작했다. 이번 메르스 사태는 정부의 방역 실패로 빚어진 일이었지만 정부는 단 한 번도 메르스 사망자의 명복을 빌거나 유가족에게 유감을 표명하지 않았다. 망자는 ‘건수’로 취급됐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6월 8일 국회 본회의장 국무위원석에 혼자 앉자 메르스 확산 및 대책 관련 긴급현안질문이 시작되기 전 생각에 잠겨 있다. 문 장관은 이날 답변에서 정부의 초기 대응 실패에 대한 여야 의원의 거센 추궁에 거듭 사과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2005년 8월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남동부를 강타한 뒤 미 의회는 백서를 발간했다. 217쪽짜리 ‘계획의 실패’(A Failure of Initiative) 서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 보고서는 카트리나 희생자에 대한 기도와 추념으로 발간됐다. 그들의 가족들, 친구들, 잃어버린 삶과 재산, 꿈은 너무 컸다. 우리는 그들을 돕기 위해 팔을 걷어붙인 모든 미국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발간 주체가 의회라는 점을 감안해도 우리 정부와는 너무 비교된다. 반년 동안 83만여쪽의 자료를 검토하고 22차례의 청문회를 거쳐 300여명을 증언대에 세운 끝에 나온 이 백서는 재앙이 남긴 17가지 교훈과 135개의 권고안을 담았다. 미국 재난 담당자의 경험 부족과 정부 지도력의 결여, 백악관의 관료적 형식주의 등이 허리케인으로 인한 피해를 증폭시켰다고 지적했다.
메르스 사태는 정부의 무능력이 키운 인재(人災)다. 비밀주의와 비전문가들의 오판, 대형병원의 자만이 일을 키웠다. 3일 정부는 2조5000억원의 메르스 관련 추경예산을 편성했다. 두 차례의 재앙을 겪고도 반성은 없는 상태에서 예산과 조직만 비대해질까 우려된다.
조병욱 기자 brightw@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