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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野 "전국민 대상 도청 의혹" 국정원 "대북 정보전"

국회 정보위 ‘해킹’ 집중 추궁
국회 정보위는 14일 전체회의를 열고 스마트폰 해킹 프로그램 구입 의혹을 받고 있는 국가정보원을 집중 추궁했다.

국정원은 이날 회의에서 해킹 프로그램을 구입한 사실을 인정했지만 우리 국민을 대상으로 한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국정원은 현안보고를 통해 2012년 1월과 7월 이탈리아 보안업체 ‘해킹팀’으로부터 각각 10명분씩 모두 20명분의 ‘RCS(Remote Control System)’ 소프트웨어를 구입했고 구입 목적은 대북 및 해외 정보전을 위한 기술분석과 연구개발용이라고 밝혔다고 정보위 여당 간사인 새누리당 이철우 의원이 전했다. 이병호 국정원장은 “국민을 대상으로 해킹했다면 어떤 처벌도 받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야당 정보위원들은 이르면 이번주 국정원을 방문해 현장확인 절차를 밟기로 했다.

이병호(가운데) 국가정보원장이 14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스마트폰 해킹 프로그램 구입 의혹에 대한 의원 질의를 받고 있다.
남정탁 기자
국정원은 2012년 ‘육군 5163부대’라는 위장 명칭으로 해킹팀으로부터 스마트폰 도·감청을 위한 해킹 프로그램을 수억원을 주고 구매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날 비공개 회의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은 해킹 프로그램 구입이 2012년 총, 대선을 앞둔 시점이라는 것을 지적하며 선거 개입 의혹을 강력 제기했다.

국정원이 삼성 갤럭시 휴대전화에 대한 도청기능을 개발해 줄 것을 보안업체에 요청하고 스마트폰 단말기를 업체로 보낸 사실 등도 도마에 올랐다. 야당 의원들은 도·감청을 피하기 위해 사용한 스마트폰 메신저 ‘바이버’ 해킹 여부를 문의한 사실 등에 대해서도 캐물었다. 특히 국정원이 해킹팀에 카카오톡 프로그램 해킹에 대해 자문을 구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사실상 전 국민을 도청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새정치연합 김광진 의원은 국정원이 해킹팀으로부터 구입한 도·감청 프로그램인 RCS를 해킹 대상자의 휴대전화에 설치하기 위해 ‘피싱 URL’ 주소를 보내고 해킹 대상자가 주소에 접속하면 스마트폰에 바이러스를 설치하는 방식을 사용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김 의원은 “국정원은 이러한 방식으로 최소 87회에 걸쳐 해킹팀에 피싱 URL 제작을 의뢰한 것”이라며 “국정원이 구입한 해킹 프로그램을 이용해 지난 6월29일, 최근까지도 누군가를 감시해 왔다는 정황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정원은 보고에서 “북한이 최근 2만5000대의 우리 국민 휴대전화를 해킹해 금융정보를 빼갔고 국정원은 이러한 사이버위협에 대응하고자 국제사회에 통용되는 최신 기술을 연구해야 했다”며 “이를 위해 관련 소프트웨어를 구입하고 해킹팀 본사와 이메일을 주고받았다”고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병호 국정윈장과 정보위원들이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원회에 참석하고 있다.
남정탁 기자
야당은 해당 의혹을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으로 규정하고 총공세를 펼쳤다. 새정치연합은 15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국정원 불법카톡사찰의혹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진상규명에 나서기로 했다. 김영록 수석대변인은 현안 브리핑에서 “해킹을 대행한 나나테크 관계자 등에 대한 출국금지와 신변 확보에 나설 것을 사법당국에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정의당 정진후 원내대표는 “의혹이 사실이라면 중대범죄이고 국가정보원이 아니라 국민사찰원으로 이름을 바꿔야 할 것”이라며 국회 차원의 철저한 국정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 소속 해군 장교가 해군 구축함 관련 군사기밀을 중국에 유출한 사건과 국정원이 경력판사 임용에 지원한 변호사들에 대해 신원조회를 한 사실에 대해서도 여야 의원들의 추궁이 이어졌다.

국정원은 이날 회의에서 최근 북한 상황도 보고했다. 국정원에 따르면 북한은 처형된 간부가 등장하는 영상기록물의 삭제와 같은 이른바 ‘흔적 지우기’ 작업을 중단했다. 최근 숙청된 것으로 알려진 이후에도 북한 TV에 모습을 드러내 진위 논란이 일었던 현영철 전 인민무력부장은 총살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정보위 여야 간사가 전했다.

야당 간사인 새정치연합 신경민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현영철의 모습이 북한 TV에 자꾸 나오는 것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그렇게 지시한 때문이라고 한다”며 “처형 간부 흔적 지우기가 대외적으로 처형을 공식화하는 근거로 활용된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흔적 지우기 작업을 중단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박영준 기자 yj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