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즈 칸 지음/최규선 옮김/김영사/2만2000원 |
‘전 재산 320억달러(약 36조원)를 사회에 환원한 세계 4대 부호, 9·11 테러 당시 1000만달러를 미국 뉴욕 쌍둥이빌딩 기금에 기부했다가 퇴짜 맞은 사우디아라비아 왕자.
신간 ‘알 왈리드, 물은 100도씨에서 끓는다’는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아랍인 이야기다. 사우디 왕가 출신이면서도 레바논 출신 모계 때문에 오일달러를 한 푼도 받지 못한 알 왈리드 빈 탈랄(60)은 “오히려 이런 고통이 오늘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했다. 알 왈리드는 이달 초 국내 포털 검색어 순위 1위에 올랐던 인물이다.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미담 사례로 우리 실정과 비교되기도 했다. 당연히 ‘오일달러 왕국 사우디의 왕자이기에 그럴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시샘 어린 비평도 나왔다.
그러나 이 책을 보면 사우디 왕가의 자손이라는 세인이 만든 프리미엄은 애초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의 초기 인생은 비운 그 자체였다. 1990년대 당시만 해도 사우디 왕족이 5000여명이었으니 그는 호적만 왕가였지 사실상 평민이나 다름없었다.
알 왈리드가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 김영사 제공 |
“아버지가 방 네 칸짜리 작은 집을 줬다. 컨테이너 사무실이었다. 시작은 힘들었고 두세 달 후 돈이 떨어지자 은행에서 집을 담보로 3만달러를 빌렸다.” 특유의 성실함과 부지런함으로 차곡차곡 돈을 모았다. 그가 억만장자로 성공한 계기가 된 건 씨티은행 전신인 시티코프에의 투자였다. 그는 미래 가치를 내다보고 시티코프 지분을 사들여 대성공을 거둔다.
“씨티코프가 부도 직전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아버지도 눈물로 호소하며 ‘투자하지 말라’고 했지만 가능성을 믿기에 투자했다. 씨티코프에 5억9000만달러(약 6500억원)를 넣었다.”
알 왈리드는 1990년 위기에 빠진 씨티그룹을 구제하면서 최대 개인 주주로 등극했다. 사업을 시작할 때 시티은행에서 3만달러를 빌렸던 그가 25년 만에 200억달러(약 22조원)가 넘는 지분을 확보하며 개인 최대 주주가 된 것이다. 뉴욕 월가에서는 그를 ‘투자의 신’이라고 했다. 알 왈리드는 1995년 50달러였던 애플 주가가 18달러로 떨어지자 지분 5%를 사들여 최대 주주로 올라섰다. 포브스는 2004년 그를 세계 4위 부호로 선정했다.
알 왈리드가 세계적 인물로 알려지게 된 건 9·11테러를 통해서였다. 저자 리즈 칸(Riz Khan)은 “알 왈리드는 테러 발생 당시 TV를 통해 끔찍한 광경을 보면서 ‘직감적으로 빈 라덴이 떠올랐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당시 테러범 19명 중 15명이 사우디 출신이었다. 자신의 거의 모든 회사의 본사가 뉴욕에 있는 알 왈리드는 테러 발생 한 달 후 희생자 추도식 때 루돌프 줄리아니 뉴욕시장에게 성금 1000만달러를 전달했다. 그러나 줄리아니 시장은 성금 접수를 거부했다. 알 왈리드가 기부 직후 ‘미국의 중동정책의 균형을 잡아 달라’고 한 성명 때문이라고 줄리아니는 발표했다. 미국의 보수 언론들은 줄리아니의 행동을 지지했다.
알 왈리드의 킹덤홀딩스 그룹이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시에 건설 중인 1000m 초고층 빌딩 조감도. 김영사 제공 |
저자 칸은 영국 공영 BBC의 월드TV 간판 진행자로 활동한 방송인이다. CNN의 인기 대담프로그램 ‘리즈 칸과의 Q&A’를 통해 넬슨 만델라, 달라이 라마, 힐러리 클린턴, 코피 아난, 톰 클랜시, 리처드 기어 등 화제의 인물들을 인터뷰해 유명해졌다.
지난해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알 왈리드와 만나 악수하고 있다. 김영사 제공 |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