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친구들도 이젠 어른이 됐으니까 잘 따라 할 수 있을 거예요"
지난 18일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하 마리텔)'에 종이접기 공예의 대가 김영만 종이문화재단 평생교육원장이 출연하며 인터넷과 SNS가 관련 내용으로 뜨겁게 달궈졌다. 김영만 아저씨는 20여 년 전과 같은 모습으로 시청자들 앞에 나타났고, 90년대에 어린이 시절을 보낸 젊은이들은 "안녕하세요, 친구들"하고 건네는 아저씨의 인사에 방울방울 떠오르는 옛 추억이 떠올라 벅찬 감동을 느꼈다.
◆ 90년대 유년기를 지낸 '코딱지'들의 성장통
80년대 생들은 90년대 초등학교 시절 "웃어른을 공경하자", "부모님 말씀을 잘 듣자"는 어른들의 말씀을 따라 착하고 바른, 명랑하고 슬기로운 어린이가 되길 바랐다. 그 시절 100원, 200원 하던 불량식품을 입에 물고는 무릎 밑에 때가 낄 때까지 놀던 어린이들은 창문을 통해 "밥 먹으러 들어오라"는 엄마의 엄포에 집으로 뛰어 들어가곤 했다. 이전 세대들에 비해 조금 더 살만해졌던 90년대 초, 그때 어린이들은 어리고, 푸르고, 아무 생각 없이 뛰어놀던 철부지 코딱지들이었다.
대다수의 어린 세대들은 부모님 말씀을 잘 들으면 저절로 훌륭한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1997년, 부모세대가 무너져 내리고 사회 전반에 고난과 역경의 내음이 짙게 깔리는 일대 사건이 벌어졌다. IMF 경제위기. 밝고 명랑했던 어린이 친구들은 경제적 성공을 위해, 무너진 부모세대를 대신해 서둘러 어른이 돼야 했다. 불안과 두려움을 안은 채 내몰린 이들에게 사회는 가혹했다.
일부 어른세대들은 마치 그간의 경제적 손실을 메우기라도 하듯 젊은이들을 쥐어짜고 착취했으며, 젊은이들은 '어린이 친구들'이란 익숙한 호칭 대신 '88만원 세대', '5포 세대'라는 새로운 별명을 얻게 됐다. 사회로 나선 이들에게 많은 어른들은 김영만 아저씨처럼 다정하고 상냥하지 않았다. "잘했다", "괜찮다"는 칭찬이나 격려 보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로 힘겨운 청춘을 감내하라고 했다.
이제 TV 앞 색종이를 꺼내 놓고 앉아 김영만 아저씨를 기다리던 어린이들은 더는 없다. 교통이나 통신수단의 발달로 친구들을 만나기는 쉽지만 시간에 쫓기는 청춘들에게 친구 만나는 것은 쉬운 일만은 아니다. 그 시절의 어린이 친구들은 이제 사회의 단맛, 쓴맛, 짠맛, 심지어 신맛까지 다 본 어른이 돼 있었다.
◆ '어른이'들의 어리광, 그리고 종이접기 아저씨의 따뜻한 위로
'금손'이라는 말이 있다. 손재주가 좋은 이들을 지칭하는 인터넷 용어다. 마리텔에 등장한 김영만 아저씨 역시 여전한 금손이었다. 쓱쓱 접고 돌려 접고 나면 어느새 짜잔, 온갖 동물이나 물건들이 만들어져 있었다. '만들어 볼까요'를 따라하던 2030세대의 철부지, 코딱지들은 역시 예전처럼 서툴게 그를 따라했다. 김영만 아저씨 이마에 새겨진 세월의 흔적들은 지난 20년의 시간을 각인시켰으나 코딱지들은 아저씨의 그때 그 표정과 말투만으로도 눈시울을 붉혔다. 특히 시간이 걸리는 단순 반복 부분을 알려주며 "저는 미리 준비해 왔어요"라는 그 함정 카드 같은 말에 또다시 속기까지 했다. 김영만 아저씨는 그때의 그 모습 그대로였고, 방송을 시청하던 2030세대는 90년대 자신들의 국민(초등)학교, 유치원 시절을 떠올리며 TV 모니터 앞에 앉아 울고 웃었다.
20, 30대가 누군가에게 진심어린 칭찬을 들어본 일은 기억 저편을 한참이나 되짚어 봐야 할 만큼 멀고 생소해진 일. 그런 이들에게 "착한 친구들", "예쁜 친구들"이라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 서툰 솜씨로 종이접기를 따라하던 어린아이에서 사회의 쓴 맛을 겪은 어른으로 훌쩍 자라버린 이들은 여전히 자신들을 '코딱지'라 부르며 '잘 자라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종이접기 아저씨의 어찌보면 별 것 아닌 말에 위로받았다.
방송 당일 채팅창에는 "이제는 여러분도 어른이 됐으니까 잘 할 수 있을 거예요" 하던 김영만 아저씨의 말에 사회 구성원이자 경제활동 인구로, 성실한 납세자이자 부모로 자란 코딱지들의 "아직도 어려워요" 하는 어리광을 볼 수 있었다.
◆ "고마워요, 추억 속 색종이 아저씨 김영만"
스펙난, 취업난으로 힘들어하는 20대, 취업을 하고도 여전히 끝나지 않은 경쟁 속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30대. '삼포세대(연애·취업·결혼 포기시대)'라 불리며 내 집 하나 장만하기 힘든 세상에서 고군분투하며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걱정 근심 없이 즐거웠던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은 당연지사. 또한 과거를 재현하듯 천진난만했던 시절의 호칭을 부르며 녹슬지 않은 종이접기 실력으로 우리에게 또다시 놀라움을 준 마법사 같은 김영만 아저씨의 등장은 단순한 '추억팔이'가 아닌 '힐링'으로 다가왔다.
김영만 아저씨는 한 인터뷰에서 "언젠가 이빨 다 빠진 노인네가 돼 다시 나와 종이접기를 하면 또 새로운 추억이 생길 것"이라며 "언제까지고 코딱지들을 위해 그 자리에 있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의 코딱지들이 언젠가 40대, 50대, 60대가 돼서도 그의 앞에서는 얼마든 어리광을 피워도 될 것만 같다. 변함없이 따뜻하게, 포근하게 "착한 친구들, 예쁜 친구들, 오늘은 어떤 걸 만들어 볼까요?"라고 환하게 웃어 보일 테니.
라이프팀 차주화·장유진 기자 cici060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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