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의원과 더불어 야당 인사들의 칭찬을 받는 새누리당 인물이 있다. 남경필 경기도 지사다. 선거 공약으로 내세운 연정(聯政·연합정부)을 실천해 새정치연합 측에 사회통합부지사직과 6개 산하기관 인사권을 내줬다. 생활임금제, 공공산후조리원 설치와 같은 야당 공약을 받아들여 예산 편성도 끝냈다. 처음에는 “정치쇼 아니냐” “들러리 서는 거 아니냐”며 시큰둥해하던 야당 인사들도 지금은 새로운 정치모델이라고 호평한다.
황정미 논설위원 |
잠재적 적수인 이들을 바라보는 야당 인사들 속내가 편치만은 않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남의 당 사람들 잘한다고 칭찬할 때냐”라는 푸념이 나올 만하다. 도무지 야당에는 지지세를 확장할 만한 인물도, 비전도 눈에 띄지 않는다. 자신을 등판 전 몸 푸는 ‘불펜투수’로 비유한 안희정 충남도지사 정도 꼽힐까. 여의도에선 가치와 정책에 대한 논쟁보다 친노니, 비노니 계파 갈등이 판친다. 그 중심에 ‘86세대 책임론’이 있다. 최근 김상곤 혁신위원회 이동학 위원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계기로 다시 불거졌다. 그는 전대협 의장 출신의 이인영 의원(서울 구로갑)을 겨냥해 “86그룹은 후배 세대들의 사다리를 걷어찼다”며 적진 출마를 제안했다. 80년대 이화여대 총학생회장 출신 임미애 위원이 올린 글은 더 노골적이다. “86세대는 아직도 87년의 지나간 잔칫상 앞에 서성이고 있는 듯하다. 15년간 뭘 했느냐는 청년들의 말에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다.”
화려하게 등장했던 386(30대·80년대 학번·60년대생)세대는 세월이 흘러 486, 586 정치인이 됐다. 정치개혁과 동의어였던 그들은 이제 기득권 세력이다. 임 위원이 쓴 ‘86 숙주정치’라는 표현대로 기존 계파에 ‘기생’하는 단계를 넘어 계파의 권력이 됐다. 그들이 지난 세월 운동권 출신답게 진영의 논리, 싸움의 기술을 닦아온 것처럼 운동의 정신은 얼마나 진화했는지 묻게 된다. 민주화 이후 그들의 제1 가치는 어떻게 달라졌는지, 시대 흐름에 발맞춰 그들이 새롭게 내건 비전은 무엇인지.
이들과 비슷한 시기 정치를 시작한 남 지사나 유 의원은 나름 정치적 진화를 거쳤다. 남 지사의 연정은 오랜 독일 연구모임의 산물이다. 미국 경제학 박사 유 의원은 2007년 박근혜 대통령 경선후보의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운다) 공약을 만든 자유주의자였지만 공정한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쪽으로 움직였다. 김영춘 전 의원은 두 해 전 한 외국 월간지에 이런 글을 기고했다. “386 정치인들이 새로운 패러다임의 구현을 위해 이제 과거의 이념적 고정관념을 벗어나 과학적 자세로 실증하고 공부하는 정치인으로 거듭났으면 좋겠다.” 86세대가 거듭났다면 작금의 책임론도 없을 것이다. 각자도생, 지금 야당의 86세대 모습이 딱 그렇다.
황정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