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봉 동덕여대 명예교수·전 한국일본학회 회장 |
같은 덫을 경험한 상황에서 왜 이렇게 다른 결과를 초래한 것일까. 거기에는 정보의 역할이 컸다. 일본의 언론은 한국어판이 없다. 중국의 언론은 일본어판을 만들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의 언론은 인터넷 일본어판을 발행하고 있어 일본인들이 한국의 적대적인 기사를 여과 없이 접하고 있다. 게다가 한국의 네티즌이 쏟아내는 일본에 대한 적대적인 표현은 우리가 만든 자동번역기를 통해 일본의 네티즌이 실시간으로 접하게 된다. 즉, 한국에서 전개되는 일본에 대한 생각과 표현은 고스란히 일본인에게 중계되는 것이다. 일본어판 기사를 통해 일본 독자를 설득하기는커녕 한국이 일본을 적대시하고 있음을 일본인에게 확인시켜준 셈이다. 그 결과 전에 없던 혐한 감정이 일본 열도를 뒤덮게 됐고 회복될 낌새조차 보이지 않는다. 우리 쪽의 의사표현 방식과 정보운영의 취약점이 드러난 것이다.
우리가 아베의 그릇된 역사관을 바로잡고자 하는 목적은 지난 역사의 진실을 밝힘으로써 올바른 한·일관계를 정립해 평화로운 미래를 후손에게 남겨주기 위함이 아니겠는가. 여론은 일본을 적성국가처럼 대하고, 경제는 우방으로 대하는 이중적 자세로는 고착상태에 빠진 지금의 한·일관계를 개선할 수 없다. 한국 정부는 다가올 아시아 시대를 대비한 구체적인 대일 정책을 제시함으로써 보다 능동적으로 여론을 선도해가야 한다. 여론을 들끓게 해놓고 정치는 물밑에서 교섭하던 20세기의 방법은 양국 정계 모두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선거가 정권을 선택하는 민주화된 정보화시대의 한·일 관계 정립에는 양국 여론의 역할도 매우 크다.
따라서 한국의 언론은 일본어판 기사의 효율성을 재고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 감정일변도의 표현을 자제하고, 평화로운 아시아의 새 역사를 우리가 선도해 가기 위해 보다 대승적이면서 다양한 대일 자세의 확립이 우선돼야 하겠다.
이덕봉 동덕여대 명예교수·전 한국일본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