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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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했지만 아내가 없습니다"

다문화시대 위장결혼 피해 ‘속수무책’…국제결혼 한달 만에 아내 돌아가…대법 "혼인 무효 사유 안돼" 판결
국제결혼 한 달 만에 배우자가 가출해 본국으로 돌아갔더라도 ‘위장결혼’의 증거가 없다면 혼인은 무효가 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피해자의 일방적 주장만으로는 혼인무효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국제결혼중개업체의 ‘사기 결혼’에 휘말린 국내 남성들이 법적 구제를 받지 못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대법원 2부(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이모씨가 “혼인을 무효로 해 달라”며 가출한 중국인 아내 A씨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5일 밝혔다.

이씨는 2011년 6월 국제결혼중개업체를 통해 단기간 국내에 들어와 있던 A씨를 만난 뒤 혼인신고까지 했다. 그러나 A씨는 한 달 만에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 A씨에 대한 가출신고를 마친 이씨는 “아내가 취업 목적으로 위장결혼을 했다”며 혼인무효 소송을 냈다. 하지만 재판부는 “A씨가 이씨와의 결혼생활에서 발생한 불화로 가출했을 수도 있다”며 “A씨가 혼인할 의사 없이 국내 취업과 체류기간 연장만을 목적으로 혼인신고를 했다고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며 이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난 7월 서울가정법원은 결혼식을 치른 뒤 잠적한 베트남 신부를 상대로 한국인 남편 B씨가 낸 혼인무효 청구를 기각했다. B씨는 “아내가 ‘성혼 비용’을 목적으로 접근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씨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베트남 아내가 진정한 혼인의사 없이 금전적 이득을 목적으로 혼인신고를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혼인무효는 ‘결혼한 적이 있었다’는 사실이 기록으로 남는 이혼이나 혼인취소와는 달리 서류상 ‘미혼’이 되므로 훨씬 엄격한 판단이 요구된다. 민법은 당사자끼리 처음부터 혼인에 대한 합의가 있었는지, 당사자 간의 관계가 법률에서 정한 근친혼의 범위에 포함되는지 등이 혼인무효 사유에 해당한다고 정해 놓고 있다.

법률의 엄격한 잣대에도 혼인을 ‘없던 일’로 하고 싶어하는 배우자는 매년 늘고 있다.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발간한 ‘2011∼2013 사법연감’에 따르면 혼인의 무효와 취소를 구하는 소송은 2011년 974건, 2012년 1094건, 2013년 1149건으로 증가했다.

서초동의 한 가사사건 전문 변호사는 “명백한 증거가 없다면 ‘사기결혼’을 목적으로 의도적으로 접근한 배우자와의 혼인을 무효로 만들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며 “영화 ‘파이란’과 같이 실체가 없는 혼인이었을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혼인무효가 인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민순 기자 soo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