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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선에서 마도 4호선까지… 40년 수중 발굴사

인양선 14척중 12척이 고려 배… 도자기가 대표적 유물
잠수부들이 바닷속에서 유물 발굴 작업을 벌이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조선, 목간, 분청사기.’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가 지난 26일 충남 태안의 마도 해역에서 발굴된 ‘마도 4호선’을 설명하며 내놓은 자료의 키워드다. 

마도 4호선은 지금까지 나온 14척의 고선박 중 조선 시대의 것으로는 처음이며, 목간과 분청사기는 이 배가 13세기 초의 조운선이라는 점을 확인해준 유물이다. 세 단어가 마도 4호선만 설명하는 게 아니라는 점은 흥미롭다. 1976년 전남 신안에서 ‘신안선’이 발견된 이후 40년 정도 진행된 한국의 수중발굴 역사에서 두드러지는 면모를 부각하고, 반복되는 특징을 재확인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충남 태안의 마도 해역에서 발견된 마도 1호선의 잔존 선체가 인양되고 있다.
◆수중발굴의 주무대, 조선보다는 고려


“수중발굴이 시작되고 40년 정도 지난 이제야 조선 시대의 배가 나온 이유가 뭘까.” 이런 질문은 충분이 가능하다. 마도 4호선 이전에 확인된 13척 중 12척은 고려의 배와 고려 시대에 활동한 중국 배다. 나머지 1척은 통일신라 시대에 건조됐다. 고려의 배가 조선의 배보다 남아 있을 확률이 적다고 보는 것이 상식적인데 실제 발견된 것은 12대 1 압도적으로 많다. 고려, 조선의 배들이 오간 항로는 크게 다르지도 않았다. 목적지가 고려 시대에는 주로 개성, 조선 시대에는 한양으로 차이가 있었지만 남해안 지방에서 서해 연안을 따라 북상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조선 후기 문신인 조희백이 쓴 조운일기 ‘을해조행록’을 보면 전라도 웅포에서 강화에 이르기까지 먼바다로 나가지 않고 연안 항로를 이용한 것이 확인된다. 서해에서 선박이 난파되었다는 조선의 기록도 여럿이다. 

현재로서는 이유를 알 수 없다. 마도 4호선 발굴에서도 이유를 유추해 볼 만한 힌트는 없었다고 한다. 사전에 해역을 특정하고 탐사하기도 어려운 만큼 조선 시대의 선박이 나오는 것은 우연에 맡길 수밖에 없는 셈이다. 

도자기·토기류는 수중발굴을 대표하는 유물이다.
◆대표 유물은 수만점의 도자기


지금까지 수중발굴에서 나온 유물은 모두 4만9800여점이다. 이 중 4만8700여점이 도자기·토기류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마도 4호선에서도 그랬듯, 도자기는 수중발굴을 대표하는 유물이다.

도자기가 많은 것은 우선 생산지가 부안, 해남, 강진 등 남해안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만들어진 도자기들이 고위직 인사에게 주는 선물이나 정부에 바치는 공물 등으로, 배에 실려 당시의 수도인 개성, 한양으로 운반됐다. 도자기가 시간의 흐름에도 변형되거나 부패되지 않는 재질이라는 점도 결정적이다. 

문화재계 인사들이 바닷속에서 발굴된 도자기와 생활용품 등의 유물을 살펴보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수중에서 발굴된 도자기는 육지의 그것에 비해 상태가 좋다. 배에 실렸던 도자기는 만들어진 지 얼마 안 돼 소비지로 이동한 것이라 생활의 흔적이 전혀 없다. 이런 게 바다에 가라앉은 뒤 진공상태나 다름 없는 갯벌 속에서 파묻혀 온전한 모습을 유지하며 수백년 세월을 견딘 것이다. 반면 고분에서 출토된 것은 지하수 영향으로 손상이 불가피하다. 또 가마터에서 대량으로 나오는 도자기들은 실패작을 깨뜨려 버린 것이라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게 드물다. 도자기 전문가인 나선화 문화재청장은 “바다에서 건져 올린 도자기는 표면에 윤기가 풍부하다는 걸 한눈에 알 수 있다”며 “가마에서 막 꺼낸 것 같은 느낌을 준다”고 말했다. 

바다에서 발견된 목간.
◆유물 정보의 아이콘, 목간


목간은 화물의 ‘바코드’ 같은 역할을 했다. 화물의 구체적 내역, 수취인과 발송자 등의 정보를 담고 있다. 마도 목간에 적힌 ‘羅州廣興倉’(나주광흥창)은 나주에서 광흥창으로 향하는 화물임을 표시한 것이다. 마도 1호선의 목간에는 수취인이 ‘대장군 김순영’, 발송자는 지방 향리의 장 혹은 호장 등의 직책을 가진 관리로 적혀 있다. ‘정묘’, ‘무진’의 간지가 적혀 있어 배의 연대를 특정하는 데도 도움이 됐다. 목간은 지금은 확인하기 힘든 당시 일상 생활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목간에는 화물 목록이 기록되기도 했다. 먹거리 화물도 많았는데 두드러지는 것이 어패류였다. 특히 젓갈류가 많았다. 생선, 게, 생선알 등을 이용한 것이었다. 메주가 유통되고 있었다는 사실도 확인된다. 조세로 바친 것인지, 개인적으로 오간 물품인지는 알 수 없으나 메주도 바다를 통해 유통되었다. 목간은 태안선에서 처음 발견됐고, 마도 1∼4호선에서 나왔다. 지금까지 260여점의 목간이 출수됐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