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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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어진 창극… 뮤지컬 매력 갖췄다”

국립창극단 ‘적벽가’ 두 주연 이광복·김준수
소리꾼에게 ‘적벽가’는 판소리 다섯 바탕 중 가장 험난한 산맥이다. 고음이 많고 음폭이 큰 데다 풍부한 성량이 필요해서다. 워낙 어렵다보니 전통적으로 소리꾼의 기량을 가늠하는 척도로 여겨졌다. ‘적벽가’는 소리하기 힘들뿐더러 창극으로 만들기도 쉽지 않다. 중국 고전 ‘삼국지연의’의 적벽대전이 주 내용이라 화공 전쟁과 백만대군을 시각화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국립창극단이 창단 50년 이래 ‘적벽가’를 공연한 것도 1985년, 2003년, 2009년 단 세 번뿐이었다.

15∼19일 국립창극단이 ‘적벽가’를 새롭게 무대에 올린다. ‘적벽가’는 거침없이 관객층을 넓혀온 국립창극단이 ‘정통 창극’으로 정면승부하는 의미를 지닌다. 국립창극단은 최근 3년간 ‘창극은 고루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깨왔다. 창극에 스릴러와 ‘19금 코드’, 서양 비극을 접목해 호평 받았다. 이번 공연에서는 ‘젊어진 창극단’의 차세대 소리꾼 두 명이 주연으로 이름을 올렸다. 정식 입단 2년차인 이광복(32)과 김준수(24)가 각각 조조와 제갈공명 역을 맡는다. 최근 국립극장에서 만난 두 사람은 ‘적벽가’에 대해 “절제미 있는 무대를 배경으로 격조 높은 판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있을 것”이라며 “극적인 재미와 예술성,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잡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국립창극단 신작 ‘적벽가’에서 조조 역을 맡은 이광복(오른쪽)과 제갈공명을 연기하는 김준수는 “요즘 창극은 젊고 재미있어졌다”며 “시대가 변하면서 관객도 배우도 젊어졌다”고 말했다.
남제현 기자
보통 적벽대전은 영웅들의 한판 승부로 각광 받는다. 이번 ‘적벽가’는 영웅에 가려진 장기판의 ‘말’들에 주목한다. 전쟁에 희생되는 막대한 인명, 민초의 삶을 들여다본다. 이광복은 “영웅담보다 이런 고통이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는 평화의 메시지가 강하다”며 “조조와 제갈량이 주인공이기는 해도 무대 위 모두가 돋보이는 그림”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맡은 조조는 표현하기 쉽지 않은 인물이다. 그는 “조조는 지도자로서 분명 카리스마와 탐욕이 있지만 패전 후 도망치다가 메추리가 적군인 줄 알고 ‘에쿠 내 목 달아났다. 내 목 있나봐라’ 할 정도로 겁도 많다”며 “예술적 심미안과 해학적인 면모까지 갖춰서 연기하기 까다롭다”고 말했다. 창극단의 막내 김준수 역시 ‘섬세하고 중성적인 제갈량’을 표현하려 땀 흘리는 중이다.

“공명은 신비주의에 쌓인 느낌입니다. 소리꾼은 소리할 때 자연스럽게 손짓 발짓이 나오는데, 연출이 몸 움직임을 자제하도록 주문해요. 공명은 서서 노래하는 것만으로 신선 같고 매력적으로 보여야 해서요. 저로서는 밋밋하고 어색하죠.”

댄스음악과 힙합이 더 자연스러울 젊은이들이 우리 소리를 하는 모습은 조금은 이채롭게 보인다. 두 사람이 창을 하게 된 계기는 독특하다. 이광복은 “부모님의 열정적 권유로 9살 때” 시작했다. 아버지가 국악 팬이었던 데다 외가가 무속 음악을 했다. 김준수는 초등학교 4학년 때 국악과 운명적으로 만났다. 그는 “음악 시간에 민요를 배워 학교 대표로 대회에 나갔는데 거기서 소리하는 누나를 보고 판소리가 하고 싶어졌다”며 “판소리가 뭔지는 몰랐지만 어떤 끌림을 느껴 소리하는 선생님을 찾아갔다”고 말했다.

세대가 달라진 만큼 이들이 소리를 배우는 방식도 효율적으로 바뀌었다. 판소리 하면 흔히 폭포 아래에서 ‘득음’하는 모습이 신화처럼 얘기된다. 이들은 이런 얘기에 고개를 저으며 “고음이 안 나오면 배에 힘을 줘 소리 지르기보다 다른 방법을 연구하고 나만의 방법을 찾는 게 득음 같다”며 “어릴 때는 목이 쉬든 말든 무조건 배에 힘을 줬는데 이제는 선배들의 발성법과 내 몸의 반응을 보면서 계속 이리저리 방법을 찾는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우리 소리를 어려워하는 이들을 향해 “창극은 무궁무진한 매력을 가진 장르”라고 자신했다. 이들은 “창극을 하나의 뮤지컬로 봐도 무방할 정도로 많이 젊어졌다”며 “이런 면에 관심을 가져준다면 창극이 오페라·뮤지컬 못지않은 우리만의 장르로 우뚝 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두 사람 역시 이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는 중이다.

“대중이 봐주지 않는 혼자만의 예술은 예술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제 역할은 무대에서 ‘우리 음악이 지루하지 않다, 이런 매력이 있다’는 걸 알리는 연결고리라고 봐요. 그런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이광복)

“저는 나중에 소리꾼으로서 몸짓과 안무, 연기를 가미해서 할 수 있는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고 싶어요. 아직 배워야 할 것도 많고 확실한 그림은 없지만, 늘 염두에 두고 있어요.”(김준수)

송은아 기자 se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