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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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초대석] 효율적 문화재 정책 펼치는 나선화 문화재청장

“이제는 문화재를 자원 삼아 지역경제 활성화 모색해야”
박근혜 대통령이 7일 경주의 신라 왕성(王城)유적인 월성 발굴 조사 현장을 찾아 “전통문화자원을 문화융성의 자원으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의 언급은 전통문화의 가치와 활용 가능성을 적극 개발하라는 주문이어서 주목된다. 그러나 ‘전통문화의 적극적인 활용’은 문화재 정책에서 종종 논란을 불러온 주제다. 문화재의 ‘보존’을 강조한 정책이 그간 강조되다 보니 ‘활용’ 혹은 ‘활용을 위한 개발’은 ‘훼손’을 연상시키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문화재 정책 현장의 곳곳에서 벌어지는 갈등에는 두 가치의 충돌이 잠재해 있는 게 사실이다.

“지금까지 문화재 보존을 위해 아주 강제적인 보호법을 시행했습니다. 지금은 개발과 보존이 충돌하는 시대를 지나 지역의 문화재를 자원으로 지역경제가 활성화되는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이제는 필요한 만큼의 규제를 가지고 효율적인 문화재 정책을 펼쳐야 합니다.”

지난달 25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만난 나선화 문화재청장이 문화재 정책 전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나 청장은 이날 인터뷰에서 “이제는 문화재의 개발과 보존이 충돌하는 시대를 지났다”며 “필요한 만큼의 규제를 가지고 효율적인 문화재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상배 선임기자
나선화 문화재청장의 생각은 분명했다. ‘문화재의 보존을 위한 활용’에 방점을 둔 구상이었다. 지난달 25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만난 나 청장은 이런 기조의 정책을 일관되게 강조했다.

―창덕궁 낙선재를 활용해 숙박체험을 추진하는 걸 두고 논란이 일었다.

“조선의 궁중문화에는 당대 최고의 기술, 예술성, 통치철학, 이념이 녹아 있다. 궁중문화를 활용해 한국 문화의 정체성도 보이고 문화재에 대한 관심, 보존의지를 키우자는 게 취지다. 문화재 보존은 활용을 통해서 장기적으로 갈 수 있다. 보존을 위한 활용 프로그램을 개발해보자는 것이다. 낙선재는 덕혜옹주가 1980년대까지 살았던 곳이고 외부 출입도 가능해 궁중문화체험관으로 하는 게 어떠냐는 제안이 있었다. 창경궁에서 1박2일 체험프로그램을 하는 데 호응이 아주 좋은 것도 참고했다. 구체적인 계획이 세워지면 문화재위원회의 동의, 예산 신청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너무 빨리 기사화돼 논란이 불거졌다.”

나선화 문화재청장(왼쪽)이 7일 경주 월성 유적지 발굴조사 현장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발굴 현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경주=청와대 사진기자단
―궁궐 보존을 등한시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는데.

“다양한 의견을 수렴 중이다. 그런데 문화재청의 활용계획을 부정적으로만 끌고가는 것은 굉장히 큰 상처고 슬픈 일이다. 보존을 위해 활용하는 것이고, 활용은 역사성을 널리 알리는 것이다. 문화재청이 정신 빠진 일을 하는 곳이 아니다.”

―낙선재 숙박에 300만원을 지불해야 하는 것처럼 알려져 비판이 집중됐다.

“가격에 대해서는 논의된 것이 없고, 그만 한 돈을 지불해야 할 가능성이 없다는 점을 확실하게 말씀드린다.”

―문화재청이 최근 발표한 규제 합리화 대책이 보존 정책의 상당 부분을 포기하고 재산권 행사에 경도되었다는 비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

“그간에는 보존을 위해 (문화재에) 철망을 씌우는 것 같은 정책을 폈다. 이런 식의 접근은 지역경제를 낙후시킨다. 보존을 위한 합리적인 개발을 위해 개선안을 만들었다. 꼭 필요한 만큼의 규제를 가지고 효율적으로 하자는 거다. 매장문화재 발굴의 경우 유형별로 보존범위, 규정 등을 만들어 개선한 것이다.” 

―서울 송파구 풍납토성(서울 송파구 풍납동에 있는 초기백제시대의 성곽) 문제를 두고 서울시와 갈등이 노출됐는데.

“오래전 풍납토성이 사적으로 지정되면서 (개발이 1970년대 수준에서 묶여) 주민들의 고통이 심하다. 청장으로 취임하면서 주민들을 만나 불편함이 없도록 방법을 강구하겠다고 약속했고, 1·2권역은 토지를 보상하고 3권역은 개발을 일부 허용하자는 안을 내놨다. 이건 그간에 서울시가 끊임없이 요청했던 내용이다. 그리고 전체적인 디자인은 도시계획 차원에서 서울시에서 만들어 달라고 제안했다. 문화재청이 보존을 포기한 것처럼 말하는 것은 잘못된 해석이다. 주민들의 불편을 해소하고, 유적도 제대로 보존하는 현실적인 방안이 무엇인지를 고민한 결과를 발표한 것이다.”

―정부 정책이 문화재를 경제적 잣대로 인식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경제발전에 걸맞은 문화 발전이 없었던 게 사실이다. 경제만큼 문화수준을 올려보자는 게 정책의 취지라고 생각한다. 문화재청도 전통문화를 자원으로 지역경제를 살리는 위한 정책을 하나씩 추진하고 있다. 합리적인 개발안을 내놔야 문화융성시대에 전통문화도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적극적인 활용정책을 강조하기는 했지만, 보존은 분명 문화재 정책에서 포기할 수 없는 가치다. 나 청장이 누누이 강조하듯 활용은 보존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서울역 고가공원 개발 계획이 문화재위원회에서 제동이 걸린 것에서 이런 기조를 확인할 수 있다. 문화재위원회는 지난 7월 서울시의 고가공원 변경에 필요한 현상변경 신청을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는) 서울역 주변의 역사, 환경 및 경관 등을 고려한 전체적인 계획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로 부결했다.

―서울역 고가공원 조성 계획은 어떤 점이 보완되어야 한다고 보나.

“어느 나라나 수도의 역은 도시 이미지의 중심이고 상징이다. 그것을 가릴 수 있는 새로운 건축물이 들어서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서울역의 고가도로는 (건축물로서의 효용에 시효가 되면) 헐어야 한다고 생각하던 차에 느닷없이 (고가공원 조성이) 제안됐다. 아무런 협의도 없었던 것이라 문화재위원들도 깜짝 놀랐다. 서울역에서 아주 근접 거리인 핵심 보존 지구에 새로운 가설물이 생기는 것을 현재의 상태로는 동의하기 어려워 부결한 것으로 보고를 받았다. 어쨌든 서울시에서 제안한 것이고, 이제 면밀하게 검토할 것이다. 다양한 의견이 나오는 것으로 안다. 문화재를 중심으로 충분히 검토하겠다.”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훼손 문화재인 궁궐 복원이 지지부진한데.

“상당한 시간과 돈이 필요한 일이다. 문화재청 예산 범위에서 추진하다 보니 1년에 한두 개 전각밖에 (복원을) 못한다. 경복궁만 하는 게 아니고 덕수궁, 창경궁도 해야 한다. 경복궁 복원은 고종 당시의 75% 수준을 하려고 했으나 방재시설, 쾌적한 관람환경 조성 등을 위해 45% 정도로 복원하는 수정안을 마련하고 있다. 9월쯤이면 수정된 계획이 나올 것이다.”

―단순히 예산의 문제가 아니라 정부의 문화재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 아닌가.

“한국 경제가 여기까지 이르는 데 여러 가지 투자해야 할 데가 있었고, 문화재 분야가 우선순위에서 밀려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지금은 많이 나아지고 있다. 많은 부분에서 예산이 줄어들고 있는데, 문화재 관련 예산은 올해 수준을 유지하지 않을까 싶다. 지방자치단체에서 관리하던 만인의총(임진왜란 당시 남원성을 지키기 위하여 왜적과 항전하다 전사한 군·관·민을 합장한 묘)은 국가사무로 넘어오게 됐다. 국가사무가 되면 조직, 예산이 늘어나야 하는데 각 부처의 예산이 다 줄어드는 상황에서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인터뷰가 있던 날, 마침 남북 간에 조성된 극단적 긴장이 해소된 ‘8·25 합의’가 도출됐다. 이날의 합의는 군사적 긴장을 해소했을 뿐 아니라 여러 분야 협력사업의 기대를 높였다. 문화재는 남북이 하나의 민족이란 차원에서 접근할 분야이기 때문에 적극적인 교류를 기대할 수 있다. 나 청장은 “남북이 역사를 같이하기 때문에 같이할 수 있는 것이 대단히 많다”며 적극적인 협력을 이끌어내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개성 만월대 공동발굴은 민간이 주도하고 관에서 지원을 하는 이상적인 형태고, 올해는 좀 더 적극적으로 추진할 예정이었다. 남북 긴장으로 중단될까봐 노심초사했는데, 잘 해결돼 다행이다. 개성의 만월대 말고도 평양에 있는 고구려 고분벽화를 조사한다는 협약이 되어 있다. 고구려 벽화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지만 남한에는 공유할 만한 자료가 빈약하다. 공동조사가 잘 되면 일본, 중앙아시아 등과의 역사문화네트워크를 확장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북한이 하자고 하면 당장이라도 할 수 있다. 이 프로젝트가 곧 실현되기를 기도하고 있다.”

나선화 문화재청장 프로필
▲1949년 서울 출생 ▲숙명여고 ▲이화여대 사학과 ▲이화여대박물관 학예실장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한국문화공간건축학회 이사

대담=원재연 문화부장, 정리=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