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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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속 유물 발견보다 꼼꼼한 기록이 더 중요”

[주목 이사람] ‘수중발굴 베테랑’ 홍광희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팀장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홍광희 팀장의 수중발굴 경력은 충남 태안의 마도 바다에서 시작됐다. 2009년 4월 10일 첫 출근을 했고, 한 달 정도 지나 마도 해역 발굴팀에 이름을 올렸다.

“마도 바닷속에는 도자기들이 발에 차일 정도였어요. 파편부터 완형까지 그렇게 많았어요. 묻혀 있는 게 아니라 애들(도자기)이 막 굴러다니는 거예요.”

‘신출내기’의 기운이 좋아서였을까. 그해 마도에서는 고선박이 세 척이나 발견됐다. 나중에 ‘마도 1·2·3호선’이라 불리게 되는 배들이다. 이후로 서해 바다를 오르내리며 이어진 진도 오류리, 인천 영흥도 등 수중발굴 주요 현장에 언제나 그가 있었다. 올해는 ‘최초의 조선시대 고선박’인 마도 4호선을 끌어올리며 또 한 번 각별한 경험을 더했다. 지난 24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홍 팀장을 만나 현장에서 경험하는 수중발굴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바닷속에서 유물을 보면 느낌이 다른가.

지난 24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만난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홍광희 팀장이 수중발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홍 팀장은 현장을 직접 보지 않은 사람도 이해할 수 있도록 바닷속 발굴현장을 정확하게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상배 선임기자
“훨씬 고급스럽게 보인다. 도자기들은 거짓말 조금 보태면 영롱한 빛을 띠고 있다.(웃음) 신비감이 크다. 고선박의 목재도 나무 고유의 진한 갈색, 연한 고동색이 더 뚜렷하다. 건져올려 (보존처리를 위한) 약품처리를 하면 나무가 까매진다. 물속에서 유물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건 우리들밖에 없으니까 사진으로라도 잘 남겨두려고 노력한다.”

―고선박이 발견되면 유물이 많이 나와 보람이 크겠다.

“그렇긴 하지만, 예전과 달리 요즘엔 유물 발견이 수중발굴의 목표는 아니다. 바닷속 발굴현장을 보지 않은 사람이 충분한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보고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충실한 기록을 남기는 것에 대한 책임감을 많이 느낀다.

홍 팀장은 정확한 기록의 중요성을 여러 번 강조했다. 육지발굴과 달리 수중발굴은 현장을 직접 보여줄 수 없기 때문이다.

“발굴 현장의 다양한 정보를 담아 발굴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도 현장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보고서를 작성할 때 가장 중점을 두는 게 뭔가.

“어디서 무엇이 나왔고, 어떻게 묻혀 있었는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출토 상황을 정확하게 보여줘야 한다.”

―출토 상황을 보면 어떤 걸 분석할 수 있나.

“배가 어디로 가고 있었는지, 왜 좌초되었는지, 누가 실었는지 등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런 분석이 가능하려면 출토 상황이 분명해야 한다. (배에 실은 화물의 발송자, 수신자 등을 기록한) 목간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도움이 많이 되기는 한다.”

홍 팀장이 육지발굴과 다른 수중발굴의 어려움으로 자연조건을 꼽으면서도 기록과 관련을 지었다.

“사진을 찍을 때 가장 중요한 게 시야 확보다. 이게 쉽지가 않다. 10일을 일하면 2, 3일 정도만 좋다. 이럴 때 최대한 찍어야 하는데 이게 또 시간에 제한이 많다. 물이 맑아도 해상에서 파도가 높으면 일을 할 수가 없다.”

마도 4호선의 경우에는 5월에 조건이 좋았다고 한다. “앞이 뻥뻥 뚫릴 정도로” 시야가 좋아 기록 작업에 속도를 낼 수 있었다. 마도 3호선 발굴 때는 초기에는 물이 흐려 애를 태우다가 발굴을 마무리해야 할 시점이 된 9, 10월에 시야가 터졌다고 한다. 사정이 이러니 조건이 좋을 때 최대한 작업을 많이 해둬야 한다. ‘오늘 못하면 내일도 있다’는 기대는 갖지 않은 것이 좋다.

1976년 신안선이 발굴된 이후 한국의 수중발굴은 40년 동안 상당한 발전을 이뤘다. 잠수사가 없어 해군의 도움을 받아야 했던 것에서 벗어나 자체 인력을 키우고 장비를 갖췄다. 2013년에는 수중발굴 전용선인 누리안호를 현장에 투입하면서 작업조건이 많이 좋아졌다. 홍 팀장은 “나무 바지선을 끌고 다닐 때는 파도가 조금만 높아도 작업할 수 없었는데, 누리안호를 갖게 되면서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갈 길은 여전히 멀다. 발굴을 해야 할 곳은 많지만 수중고고학을 가르치는 기관이나 시설이 여전히 부족하고, 인력 또한 수중발굴 현장에서 자체적으로 교육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홍 팀장에게 수중발굴이 발전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를 물었다.

“여러 분야의 전문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발굴에 참여했으면 한다. 이런 사람들이 많아야 발굴의 성과가 제대로 해석되고, 다양한 분석이 가능해진다. 실무에 바로 투입할 수 있는 사람들을 충원하는 것도 과제다. 고고학을 전공했다고 해도 잠수를 못하는 사람들이 오기도 한다. 수중발굴에 필요한 기술을 제대로 익히려면 몇 년이 걸린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