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직장인 박모(31)씨는 최근 자신의 다세대주택 지하 전셋집에서 물난리를 겪었다. 방바닥에서 갑자기 물이 차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장판을 들춰본 박씨는 깜짝 놀랐다. 납작한 철판 아래에서 물이 분수처럼 솟아올랐고, 철판 밑에는 도로에서나 볼 수 있는 맨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전세금 5000만원을 주고 맨홀 위에 지어진 불법 건축물에서 잠을 잤다고 생각하니 너무 황당하다”면서 “집주인은 모르는 일이라고 시치미를 떼고 있다”며 하소연했다.
#2. 서울 구로구 개봉동에서 전세금 2억8000만원인 전용면적 85㎡ 아파트에 전세를 살던 직장인 김모(43)씨는 올 초 전세 만기가 끝나 보증금을 찾아 이사를 가려다 큰 낭패를 봤다. 김씨는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아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고 강제경매까지 했지만 유찰 끝에 결국 보증금 가운데 5000만원을 날렸다”고 토로했다.
최근 전셋값이 고공행진을 하면서 지난달 매매와 전세 거래가 동시에 이뤄진 수도권 아파트 가운데 10%가 넘는 단지의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이 90%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전세가율 90% 이상 단지중 19% 가량이 전세가격이 매매가를 웃도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아파트여서 깡통 전세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부동산114가 국토교통부의 매매·전세 실거래 자료를 분석한 결과(8월16일 기준) 지난 한달간 매매·전세 거래가 동시에 있었던 수도권 1291개 주택형 가운데 12%인 155건의 전세가격이 매매가의 90% 이상에 계약됐다.
지역별로 서울은 매매·전세가 모두 이뤄진 405개 주택형 가운데 12%인 48건, 경기도는 766개 주택형 중 13%인 98건의 전셋값이 매매가격의 90% 이상이었다. 인천은 120개 주택형 중 8%인 9건의 전세가율이 90% 이상인 것으로 조사됐다.
업계 관계자는 "가을 이사철을 앞두고 수도권의 전세 품귀현상이 심화되면서 매매-전세가격의 차이가 1000만원 이하로 좁혀진 단지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서울의 강북이나 외곽처럼 집값이 싼 곳에서는 집값에 육박하는 전세거래로 깡통 전세에 대한 우려가 높아 수요자들의 주의가 필요하다"며 "전세금 안심대출이나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등에 가입해 전세금 미 반환사고에 대비한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특히 이들 전세가율 90% 이상 단지 가운데 전세가격이 매매가격보다 비싼 주택형도 총 29곳으로 18.7%나 됐다. 지난달 11일 국토교통부 국정감사에서 김태원 의원이 공개했던 속칭 '무피투자'(피 같은 내 돈을 들이지 않고 아파트를 매입하는 것)가 이들 지역에선 가능한 것이다.
인천시 동구 송림동 송림휴먼시아1단지 전용 59.99㎡는 지난 8월 전세가격이 1억7000만원에 계약된 반면, 매매가격은 최저 1억4924만원에 거래돼 전세가율이 114%에 달했다.
인근 중개업소 관계자는 "이 지역은 매매보다 전세 선호도가 높은데 전세 물건은 부족하다 보니 매매가보다 높은 금액에도 전세 계약이 이뤄진다"고 말했다.
실제 군포시 당정동 대우푸르지오 전용 84.99㎡는 지난 8월 3억2500만원에 전세 거래가 이뤄진데 비해 매매는 2억8850만∼3억3000만원에 팔렸다. 이 아파트는 전세 시세가 지난 6월까지만해도 2억9000만∼3억원이었지만, 7월 이후 물건이 품귀 현상이 심화되며 3억2000만원을 넘어섰다.
반면 매매가격은 지난 6월 3억4500만원까지 팔렸지만 7월에는 3억2500만원으로 떨어지는 등 약세를 보이면서 매매·전세가 역전 현상이 발생했다.
서울도 매매·전세 시세가 같거나 서로 역전한 아파트들이 속출하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홍제한양 전용 60.06㎡는 지난 8월 2억7000만원에 매매 거래가 성사됐지만, 전세는 1500만원 높은 최고 2억8500만원에 거래됐다. 전셋값이면 아예 집을 사고도 남는 것이다.
이처럼 전세가격이 매매가격과 맞먹을 정도로 치솟은 것은 전세 수요는 많은데 상당수 월세 전환으로 전세 물건은 씨가 말랐기 때문이다.
전세 강세가 지속되면서 지난 8월 수도권 아파트 전세가율은 72%, 서울은 70.9%로 1998년 조사 이래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매매·전세 시세 역전 현상이 종종 나타나고 있는 서울 성북구는 지난달 전세가율이 80.1%로 80%를 돌파했고 강서구(77.8%), 동작구(77.4%) 등도 80%를 넘보고 있다.
이에 따라 깡통 전세에 우려도 더욱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금은 매매가격도 뒷받침되면서 집값보다 비싼 전세가 계약되고 있지만 경기가 나빠져 매매·전세가격이 급락하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깡통 전세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시세가 떨어질 가능성이 높은 곳에선 전세금 반환보증 등의 안전장치를 미리 마련해두는 게 좋다"고 조언하고 있다.
그렇다면 소위 깡통 전세, 미친 전세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전세가 워낙 귀해 전세값이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아파트의 월세 전환이 늘어나면서 전세 물량은 더욱 부족해지고 있다.
가을 이사철을 맞아 전세를 원하는 사람은 많이 늘어난 반면 여전히 부동산 경기에 대한 우려로 내집 마련이 쉽지만은 않다는 점도 한몫하고 있다.
집을 살 수 있는데도 집을 사지 않고 깡통 전세 위험을 무릅쓰고 굳이 전세를 고집하는 것도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이럴수록 집값은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게 이유다.
전문가들도 전세가율이 너무 높으면 세입자가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깡통 전세 우려가 높아 수요자들의 주의를 당부했다.
강태욱 하나은행 부동산팀장은 "추후 집값이 조금만 하락해도 전세가격이 매매가격보다 비싼 역전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근 전세난이 서울에 이어 수도권으로 확산하면서 일부 지역에선 한동안 외면받던 보증부 월세까지 물건이 달릴 정도"라면서 "매매가에 육박하는 고가 전세는 집이 경매로 넘어가거나 집값이 하락할 경우 전세보증금을 날릴 수도 있으므로 계약 시 유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