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이후 이념전쟁에서 두 가지를 해냈다. 통합진보당 해산과 전교조 불법화는 박근혜 정부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사법부의 판결을 통한 것이지만 박 대통령의 신념이 워낙 강했기에 가능했다. 전교조 불법화에 대해선 여당 의원도 “너무 성급하다”고 했고, 통합진보당 해산에 대해 중도적 사람들이 ‘사상적 편향’이라는 우려를 표시했지만 굽히지 않았다. 지금 정국을 뒤흔드는 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도 마찬가지다. 박 대통령의 신념이 결정적이다.
백영철 논설위원 |
박 대통령의 이런 점은 미국 도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을 닮았다. 레이건은 무식했지만 미국 역사에서 누구보다 크게 성공한 대통령이다. 소련과 이데올로기 경쟁에서 승리해 미국을 유일한 슈퍼파워 국가로 올려놓았다. 레이건은 정치술책보다는 신념에 더 강한 열정을 갖고 있었다. 레이건은 소련을 거침없이 ‘악의 제국’이라고 불렀다. 흑백논리로 세상을 보고 단순명쾌하게 원칙을 지켰다. 박 대통령은 레이건 못지않다. 말이 간명하고 논리도 단순하다. 신념의 실천에 투철한 의지를 갖고 있다. 잔머리 굴리는 스타일도 아니다. 박 대통령에겐 고무적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내용이다.
레이건의 성공은 이념전쟁의 승리로만 이뤄진 게 아니다. 미국과 세계의 안보를 지키는 데 눈부신 실적을 쌓았고 경제적 성장이라는 달콤한 열매까지 안겨주었다. 박 대통령이 레이건의 길로 가야 하는 것은 자명하다. 나라를 위해서나 국민을 위해서나 그래야 한다. 하지만 수단과 목표의 혼선이 있어선 안 된다. 목표는 다른 것을 희생하더라도 반드시 이뤄야 하는 귀중한 그 무엇이다. 나라를 더 안전하게 하고, 국민을 더 풍족하게 하는 것 이상의 목표는 없다. 외교와 안보, 경제에서 성공하지 못하면서 이념전쟁에서 승리해봤자 모래를 한 움큼 손아귀에 쥔 것처럼 공허해진다. 국사 국정화로 국민 통합의 길이 더 멀어지면 이 또한 이념전쟁의 의미가 무색해진다. 빛과 그림자를 정확히 봐야 한다.
박 대통령은 국사 국정화에 대해 “국가관의 확립과 균형 있는 역사인식을 위해서”라고 했다. 그럴만한 가치가 있지만 무슨 목표 달성을 위해 그렇게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니 답답하다. 더구나 정권이 바뀌어도 불변인 지속가능한 의제가 아니다. 누가 그랬다. “대통령은 세상을 다 바꿀 것 같지만 5도 정도 움직일 뿐이다.” 소련과의 경쟁에서 승리한 레이건도 왼쪽으로 치우친 세상을 오른쪽으로 조금 움직이는 데 불과했다. 미국은 공화당과 민주당에서 세상을 옮겼다 제자리에 돌려놓는 일을 되풀이한다. 대부분 8년씩 재임하는 미국이 그렇다면 5년 단임제인 한국의 시계는 더 빨리 돌아간다.
백영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