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박사학위 취득자가 1만3000여명씩 쏟아져 나오면서 예전처럼 박사학위가 있으면 원하는 일자리를 골라가던 시대는 지나갔다. 박사학위 소지자 배출은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반면, 고학력 인력 수요는 그에 따르지 못해 오히려 고급인력의 취업난이 더 심각한 실정이다.
일반적으로 학부를 시작해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기까지 10년 안팎의 시간이 걸리고 이 기간 학비와 생활비 지출 또한 만만치 않다. 하지만 이런 시간과 비용을 보상해 줄만한 일자리는 턱없이 부족해 박사 실업자도 많이 생겨나고 있다.
실제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따르면 '2014년 국내 신규 박사학위 취득자 조사'에서 박사과정 중 지출한 학비만 3000만원 이상인 사람이 전체 응답자 7122명 중 29.8%에 달했다. 이들이 오랜 시간과 큰 비용을 투자해 박사학위를 취득하려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더 나은 대우의 직업을 얻기 위해서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지난해 박사학위 취득자의 62.8%(총 응답자 3227명)는 가장 선호하는 직장으로 '대학'을 꼽았지만, 현재 대학에서 일하는 사람은 35.9%(총 응답자 6677명)에 불과했다. 고급 인적자원을 필요로 하는 일자리는 한정적인데 구직자의 학력이 지나치게 인플레이션이 되다 보니 원하는 일자리와 실제 구할 수 있는 일자리 간 미스매치가 일어나는 것이다.
직업능력개발원 김안국·유한구 박사가 지난해 8월 내놓은 '대학 및 전문대학 졸업자의 직종별 수요 추정' 보고서를 보면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석박사 인력은 25만2901명이지만, 실제 인력은 113만589명으로 87만7688명이 과잉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자료가 2011년 '지역별 고용조사'를 기초로 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요즘 고급인력 과잉현상은 더욱 심화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학력을 갖췄어도 일자리가 없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하향지원을 할 수밖에 없다.
이 보고서의 직종별 조사을 보면 고급인력이 필요없는 사무직종에 석박사 18만5369명이 취업해 있었고, 고졸이나 전문대졸이 주로 필요한 서비스직에도 석박사 1만8334명이 일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 5월 국내 한 은행이 250여개 우수 중소·중견 기업과 함께 개최한 취업박람회는 주로 특성화고 학생이나 대학생, 이직희망자 등을 대상으로 한 행사였지만, 석박사 학위 소지자도 상당수 참가했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의 '2012년 박사인력활동조사'에서 전체 응답자 22만85명 중 2.5%는 현재 '실업' 상태에 있다고 답하기도 했다. 여기에 '비경제활동' 상태인 응답자 5.8%를 합하면 박사 100명 중 8명은 일을 하지 않는 셈이다.
고학력자의 일자리 하향지원은 사회 전체적으로 취업난을 가중시키는 원인이 된다. 석박사 인력의 하향지원은 대졸자가 전문대졸 일자리로, 전문대 졸업자가 고졸 일자리로, 고졸자가 그 이하의 일자리로 내려가는 연쇄작용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김안국 박사는 "석박사의 증가는 '학력주의'의 표출로 볼 수 있다"며 "학업성적에 따른 일자리 배치의 비효율성을 극복하고 교육을 정상화하는 등 전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한편, 국내 대학원 수와 입학정원은 지난 10년간 크게 늘었지만 일반대학원의 취업률은 떨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종로학원하늘교육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대학원 수와 입학정원은 10년 전인 2004년과 비교할 때 대학원은 17.4%(179개), 입학정원은 6.2%(7590명) 늘었다.
학교 유형별로는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등 전문대학원의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반면 전문대학원 수는 10년 전보다 83.8%, 입학정원은 129%가 각각 증가했다.
박사 과정 졸업자는 2004년 8008명에서 2014년 1만2931명으로 2004년 대비 4923명(61.5%) 증가했고, 석사과정 졸업자는 2004년 6만6720명에서 2014년 8만2805명으로 2004년 대비 1만6085명(24.1%) 늘었다.
지난해 배출된 석박사 수는 약 10만명 수준으로, 매해 6만명 수준의 박사과정 졸업자를 배출하고 있는 미국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많은 수준이다. 미국의 경우 총 2189개의 대학(일반 4년제 기준) 중 12.3%인 270개 대학만이 박사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