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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전경. |
대법원 2부(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현대오일뱅크가 한화 계열사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원고 승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고 16일 밝혔다.
재판부에 따르면 현대오일뱅크는 1999년 한화에너지 주식을 사들여 합병했다. 주식 양수도 계약에는 “한화에너지가 행정법규를 위반한 사실이 없으며, 계약 이후 이런 사항이 뒤늦게 발견돼 현대오일뱅크에 손해가 발생하면 배상한다”는 문구의 진술·보증 조항이 포함됐다.
그러나 인수합병 이후 한화에너지는 1998년∼2000년 현대오일뱅크 등과 함께 군납용 유류 입찰을 담합한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 조사를 받은 끝에 2000년 475억여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그로 인해 각종 소송을 치르며 변호사 비용과 벌금 등을 지출한 현대오일뱅크는 앞서 체결한 진술·보증 조항을 근거 삼아 한화 측을 상대로 322억여원의 손배소를 제기했다.
1심은 “한화가 현대오일뱅크에 8억2730만원만 물어주면 된다”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반면 2심은 “현대오일뱅크가 한화에너지의 군납유류 담합 사실을 인수합병 이전에 이미 알고 있었으면서도 문제 삼지 않았던 점을 고려할 때 뒤늦게 배상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며 1심을 깨고 원고 패소 판결했다.
상고심을 맡은 대법원은 계약 체결 당시 진술·보증 위반 사실을 알았는지와 관계없이 손해를 배상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계약 내용을 서면으로 작성해 문언의 객관적 의미가 명확하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내용을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며 “양측 계약서에는 진술·보증 조항 위반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손해배상 책임이 배제된다는 내용이 없다”고 판시했다.
법조계에선 이번 판결을 놓고 국내에서 ‘샌드배깅(Sandbagging)’을 원칙적으로 허용하는 첫 판례가 나왔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샌드배깅이란 미국의 기업인수합병(M&A) 과정에서 매도인의 진술 보장 위반 사실을 매수인이 알거나 알 수 있었음에도 계약을 체결하거나 거래를 종결한 뒤 매도인을 상대로 진술 보장 위반을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을 뜻한다.
현대오일뱅크를 대리한 법무법인 태평양의 이준기 변호사는 “그동안 M&A 업계에서는 샌드배깅과 관련된 논쟁이 끊이지 않아 계약 협상 때마다 큰 이슈가 되었는데, 이번 대법원 판결로 명확한 지침이 주어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