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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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포럼] 무죄를 두려워하지 않는 검사들

검찰 기소 사건들… 법원서 줄줄이 무죄
피고인에 큰 고통… 억울한 기소없어야
경기도 수원에는 화성 말고도 명물이 하나 더 있다. ‘해우재’(解憂齋)라는 집이다. 근심을 푸는 곳을 뜻하는 ‘해우소’에서 따온 이름이다. 좌변기 모양의 집 구조가 화장실과 관련 있음을 말해준다. ‘2002 한·일월드컵’ 수원경기 유치를 계기로 공중화장실 개선 운동을 펼쳐 ‘미스터 토일릿’으로 불린 심재덕 전 수원시장이 살던 집이다. 그는 화장실을 거실 중앙에 배치할 정도로 화장실 관리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한 인물이다. 2009년 심 시장 별세 이후 유족이 수원시에 기증해 지금은 화장실문화전시관으로 쓰이고 있다.

박희준 논설위원
생전 한때 심 전 시장에게 비리 지자체장이라는 오명이 씌워진 적 있다. 2001년 3월 재력가인 그가 건설업체 2곳에서 총 2억3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검찰에 구속되자 많은 시민이 놀랐다고 한다. 깨끗한 이미지로 한 단체에 의해 제1회 ‘참된 지도자’로 선정됐던 그다. 심 전 시장을 잘 아는 이들은 그가 표적수사의 희생양이었다고 주장한다. 당시 옛 수원교도소 이전을 추진한 법무부 협조 요청을 무시한 채 부지를 공원으로 조성하려다가 미운털이 박혔다는 것이다.

그는 7개월 만에 보석허가로 구치소에서 풀려났으나 비리 지자체장의 족쇄를 풀지는 못했다. 1심 유죄 선고를 받은 채 3선에 도전한 2002년 6·13지방선거에서 결정적인 패인으로 작용했다. 상대 후보들은 재판 계류 문제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그는 선거에 지고 나서 2002년 10월에야 증거부족 등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동안 마음고생이 얼마나 컸던지 심 전 시장은 법원 민원실에서 자해를 해 병원으로 옮겨지기도 했다.

요즘 하루가 멀다고 제2, 제3의 심재덕을 본다. 지난해 11월28일 세계일보가 보도한 청와대 문건의 유출 책임자로 지목된 조응천(53)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 지난 15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청와대 하명에 따른 무리한 기소라는 지적을 받은 사건이다. 그 전날에는 3000억원대 분식회계와 9000억원대 사기대출 등 혐의로 기소된 강덕수(60) 전 STX그룹 회장이 항소심에서 핵심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고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강 전 회장은 측근이 건네준 두부를 베어 먹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디 그뿐인가. 벤처업체 투자로 회사에 손해를 끼치고 회사 돈을 횡령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이석채(70) 전 KT 회장에게도 법원은 지난달 무죄를 선고했다. 이명박정부 기업인으로 꼽히는 그가 박근혜정부 들어서도 물러나지 않자 검찰이 수사에 나섰다는 게 정설처럼 되어 있다. 검찰이 군 등과 함께 방위사업비리 합동수사에 나서 기소한 황기철 전 해군참모총장도 마찬가지다. 물론 항소심이나 상고심이 남아있긴 하다. 그러나 의욕적으로 수사한 사건에서 잇달아 무죄선고가 나는 건 검찰에 굴욕스러운 일이다.

검찰 수사 및 법원 재판 과정에서 피고인이 겪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수십 개월 동안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어렵게 무죄를 받더라도 실추된 명예와 금전적 손해를 보상받지 못한다. 2006년 이후 현대차 로비 의혹과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으로 292일간 구속됐다 무죄를 받은 변양호(61) 보고펀드 대표가 하도 억울해서 검찰 측 증인을 상대로 소송을 낸 적 있다. 변호사비(2억300만원)와 정신적 손해 위자료 등 5억원을 달라는 소송이었다. 그가 손에 쥔 건 새 소송에 따른 추가 변호사 비용뿐이었다.

검사들 사이에 무죄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가 있다. 사회정의와 법치주의 확립을 위해 검찰은 기소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날로 교묘해지는 범죄 수법을 고려하면 어느 정도 타당한 말이다. 하지만 100명 중 1명이라도 억울하게 기소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법원의 잇단 무죄 선고는 검찰이 무리하게 기소했거나 공소유지를 제대로 못한 결과다. 무죄선고 후 검사가 책임졌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 없다. 무죄 선고에 대한 무감각증이 검찰에 고질병처럼 퍼져 있는 건 아닌지 묻고 싶다.

박희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