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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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미 세 자매의 께딸, 쿠바!] 수공예 파는 노점도 정갈… 마차 타고 골목골목 유랑

<7> '혁명가의 도시'
거리에서 파는 기념품점마저 깨끗하다.
‘카밀로 시엔푸에고스’는 쿠바 혁명가 중 한 명이다. 피델 카스트로, 체 게바라와 함께 혁명전선에서 싸웠던 인물이다. 1958년 야과하이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고 1959년 비행기 사고로 실종되었다. 그의 이름과 같은 명칭을 가진 도시 ‘시푸에고스’는 시엔푸에고스가 머물렀던 곳이다. 

시엔푸에고스는 혁명가이자 군인이었던 동시에 농업기술을 전파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시엔푸에고스에는 도시농업이 다른 곳보다 훨씬 더 발달했다.

도시농업은 쿠바를 자급자족할 수 있게 만든 중요한 기술이었다. 유통이 쉽지 않았던 쿠바의 도시 외곽에서는 스스로 도시 내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농업을 했다. 시엔푸에고스는 특히 도시농업이 발달해 도시에 들어서면 잘사는 곳이라는 느낌이 든다. 깨끗한 거리와 깔끔하게 색칠한 건물, 그리고 중산층이 사는 보통 집들이 그렇게 말해 주고 있다. 
깨끗한 거리에 그림도 현대적이다.

주 도로에는 시내버스가 다니며 좁은 골목에는 마차를 타고 다닌다. 시내버스를 타면 도시 끝까지 갈 수 있다. 그곳이 바로 바다다. 그곳에는 유난히 유럽 사람이 많고 심지어 요트까지 정박해 있었다.

우리가 묵은 숙소는 바다와는 먼 시내였다. 사람 사는 이야기가 더 많은 곳이다. 볼거리는 가끔 가서 보면 된다. 걸어가다가 다리가 아프거나 덥다 싶으면 마차를 타면 된다. 목적지를 이야기하지 않아도 가다가 적당한 곳에서 내리면 된다. 


보통 마차가 교통수단으로 정류장까지 있다.

외국인을 위한 마차가 아니므로 목적지를 말할 필요도 없다. 마차만 있던 숙소 골목에 큰 버스가 정차해 있었다. 웬일인가 봤더니 길에서 세차하고 있었다. 그 큰 버스를 혼자서 열심히 세차하는 남자는 묵묵히 일만 했다. 

그 광경에 놀란 우리 셋은 멍하니 그곳에 서서 바라봤다. 집에 호스를 연결해서 손 세차를 하는 모습이 놀라웠다. 생각해 보니, 쿠바에서는 모두 손세차를 직접 했다. 어떤 차도 더럽게 다니는 차가 없이 깨끗하게 반짝반짝 광을 내야만 길로 나왔다. 그래도 큰 버스를 혼자서 손세차를 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시엔푸에고스 중심가에는 특유의 파스텔 색조 건물과 깨끗한 거리에 그려진 그림이 이색적이다. 유난히 그림이 많이 그려져 있으며 그림은 현대적 감각이다. 예쁜 건물은 은행이거나 박물관, 청사와 같은 용도다. 매년 건물색을 칠해도 이렇게 깨끗할 수 없을 것만 같다. 
깨끗한 건물이 시엔푸에고스가 어떤 곳인지를 말해 준다.

중심가에는 먹을 곳도 많고 볼거리도 많으며, 은행 업무까지 볼 수 있어서 매일 갔다. 이렇게 큰 도시에서만 인터넷이 되기 때문에 인터넷 업무까지 봐야 한다. 이곳에서 인터넷을 못하면 또 언제 하게 될지 모른다.

딸 셋이 모두 여행을 떠나버려서 적적해하실 그리운 엄마에게 전화를 드리기 위해 꽤 고생을 했다. 전화국에 가서 국제전화카드를 사서 그곳에서만 전화할 수 있는데 안 될 때가 많다. 그리고 눌러야 하는 버튼을 잘 눌러야 하고 스페인어도 잘 들어야 한다. 

몇 번 시도 끝에 통화가 연결됐다. 역시 걱정을 많이 하셨단다. 언니들과 돌아가면서 통화를 하고 나니 전화카드가 끝이 났다. 여행을 떠난 사람과 남겨진 사람 사이에는 떠나온 거리만큼이나 차이가 있다. 떠나온 사람은 재밌게 놀고 있지만 집에 남겨진 사람은 연락만을 기다리면서 적적함을 달래게 된다.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도 순간으로 지나가고 우리는 다시 길을 나섰다. 길을 따라 끝까지 걸어갔다. 햇빛이 피부를 따갑게 만들 만큼 강렬해서 건물 가까이 살짝 드리운 그늘 속으로 걸어가야 했다. 더워서 지칠 때쯤 길이 끝나는 곳, 바다에 도착했다. 바닷바람이 더위를 식혀 줄 만큼 불어오진 않았다. 그래도 앉아서 시원한 음료수 한 잔은 하고 일어섰다.
파란 파스텔 건물은 우체국 건물이다.

시엔푸에고스는 노상에서 기념품을 파는 곳들마저 정갈했다. 아무 데서나 팔지 않으며 정해진 장소에서 줄지어 예쁘게 진열해 놓고 팔았다. 쿠바 수공예품을 보면 쿠바인들이 얼마나 손재주가 좋은지를 알 수 있다. 공장에서 찍어낸 제품은 비싸며 찾아보기 힘들다. 손으로 만들고 색칠한 물건들이 대부분이다. 고양이가 생선가게를 지나칠 수 없듯이 우리는 더위를 잊은 채 집집이 구경했다. 이런 곳에서 산 물건들로 점점 짐은 늘어났다. 짐이 늘어나면 가지고 온 짐을 줄이면 된다. 언제나 채워지는 만큼 버리는 것도 있어야 한다. 또한 버리는 만큼 채워지게 마련이다. 그래야만 내 어깨가 짊어질 수 있다. 그것이 여행에서 버티는 무게가 된다.

시엔푸에고스에서는 유난히 체 게바라 그림이 눈에 띄였다. 건물 위에 크게 그려진 체 게바라를 찾아내고 사진을 찍었다. 차에 그려진 작은 그림부터 건물 위에 큰 그림까지 다양한 체 게바라를 찾았다. 다음에 갈 여행지를 ‘산타클라라’로 정하게 된 이유가 바로 체 게바라다. 그러기 위해서 차를 섭외해야 했다. 산타 클라라를 거쳐서 트리니다드로 갈 계획이다. 차를 섭외하는 일까지 순조롭게 해결됐다.
체 게바라 그림을 건물에서 찾아냈다.

하지만 시엔푸에고스를 떠나는 날 아침에 일이 벌어졌다. 숙소 주인과 다툼이 벌여졌는데, 적당히 해결이 안 됐다. 아주 사소한 일이었지만 주인 할머니가 너무 화를 내서 우리도 기분이 상했기에 양보를 하지 않았다. 우리는 아침이 포함된 가격이라고 알고 있었고, 할머니는 아침을 삼인분어치를 다 따로 비싸게 계산을 했다. 사실 숙소에서 먹는 아침이 훌륭하진 않았다. 그 가격이면 레스토랑에서 훨씬 더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사실 그게 문제가 아니라 친절하던 할머니가 너무 화를 내니까 마음이 상했던 것이다. 결국엔 지나가던 공무원이 해결해 줬다. 공무원이 영어로 예의를 갖춰서 사과를 했고, 적정선에서 마무리를 지었다. 여기서 가장 곤란해한 사람은 섭외한 차 운전사였다. 우리는 더 미안해지기 전에 서둘러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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