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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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경의 인더스토리]30년 반도체전쟁 시작되나…2차 메모리 '치킨게임'

다시 불거진 글로벌 반도체업계 '死生결판'

中 "반도체 굴기" vs 韓 "더 크기前 견제"

지난 1일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일본 경단련 및 중국 국제무역촉지위원회(CCPIT)와 공동으로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한·일·중 3개국 대표 기업인, 정부인사 등 4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5차 한·일·중 비즈니스 서밋’을 개최했다. 사진=전국경제인연합회

#. < 제1차 반도체 전쟁 > 1980년대 D램 시장은 NEC·히타치·도시바 등 일본 전자회사들의 독주 체제였다. 일본 업체끼리 번갈아 글로벌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던 시절이다. 이 때만해도 삼성전자는 1985년 매출 기준 세계 42위에 불과했다. NEC 반도체부문 매출은 삼성전자의 무려 20배에 달했다.

그로부터 30여년의 시간이 흘러 2012년 일본 최대 반도체 회사인 엘피다가 무너지면서 한국과 일본 간 생사(生死)를 건 ‘제1차 메모리 전쟁’은 우리나라의 승리로 끝났다. NEC·도시바 등 일본 업체들은 D램 시장에서 마침내 철수했다. 반도체 1차 대전에서 생존한 글로벌 기업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미국) 단 3곳뿐이다.


글로벌 반도체 업계에 또다시 ‘30년 반도체 전쟁(戰爭)’의 포문이 열리고 있다.

이번에는 ‘한-중’(韓中)전이다. 지난 30년간 치열했던 한-일(韓日)전에서 최종 승자로 살아남은 국내 반도체 업체가 주도로, 중국 견제용 ‘치킨게임’이 불붙고 있다. 최근 한 달 사이에 10% 가까이 급락한 D램 판매가격은 한국발(發) 치킨게임의 예고편이라는 분석이다.

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10개월 연속 마이너스(-) 성장세를 보이는 등 곤경에 처한 한국 수출을 이끄는 견인차이자 반도체 코리아의 주력 품목인 D램 가격이 올해 들어서만 ‘반 토막’이 났다.

올 초만 해도 29.5달러에 이르던 D램 대표 제품인 DDR3 4GB(기가바이트) 모듈 평균 계약가격은 지난달에는 16.75달러로 열 달 만에 약 50% 폭락했다. 특히 지난 한달 사이에만 10% 정도나 빠졌다.

얼마 전 반도체 시장조사기관 D램익스체인지는 “DDR3 4GB 평균가격이 지난 9월 18.5달러에서 10월에는 16.75달러로 9.5% 떨어졌다”고 발표했다. 최저 계약가는 이미 16.5달러까지 내려갔다.

가격 하락으로 수익성에 빨간불이 켜졌지만, 국내 반도체 업체는 오히려 공격적 투자를 밝힌 상태다. 값싼 중국산(産) 메모리 반도체에 맞서 업계 1·2위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대규모 투자로 대응한다는 입장이다.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 생산단가를 낮춤으로써 중국 후발업체들이 시장에 뛰어들더라도 ‘고사’(枯死)시키겠다는 전략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올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대규모 투자계획 발표는 중국의 도전에 대한 일종의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며 “중국이 쫓아오겠지만 충분히 도망갈 수 있다”고 판단했다.


◆ 도전장 내민 중국…진입장벽 높이는 ‘글로벌 톱2’

D램 시장 점유율 1·2위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설비 증설에 집중하고 있다. 삼성과 하이닉스의 점유율 합계는 70%를 넘는다. 반도체 D램 시장에서 ‘글로벌 톱2’를 굳건히 지키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합산 점유율은 5분기 연속 사상 최대치를 경신하며 가파른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다.

9일 반도체 전자상거래사이트 D램익스체인지에 의하면 올해 3분기 전체 D램 시장 점유율 순위는 ▲1위 삼성전자 46.7% ▲2위 SK하이닉스 28.0% ▲3위 마이크론(미국) 19.2% ▲4위 난야(대만) 2.9% ▲5위 윈본드(대만) 1.3% 순으로 집계됐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양사의 점유율을 합치면 74.7%로, 지난 2분기(72.8%)보다 1.9%포인트 올랐다. 삼성전자가 45.1%에서 46.7%로 점유율을 1.6%포인트 끌어올렸고, SK하이닉스도 27.7%에서 28.0%로 0.3%포인트 상승했다.

모바일 D램 시장에서도 이들 두 회사의 합계 점유율은 83.3%다. 전체 D램 시장에서 ‘반도체 코리아’의 압도적인 고공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기존 설비 증설계획을 지속 추진하는 한편, 모바일과 서버 D램 등 고부가가치 상품 중심으로 ‘프로덕트 믹스’(제품구성)를 강화한다는 복안이다.

삼성전자는 경기도 평택에 조성 중인 반도체 대단지에 대해 오는 2017년까지 총 15조6000억원을 1단계 투입할 예정이다. SK하이닉스도 2024년까지 신규 공장에만 전부 46조원을 들인다고 공시했다.

이 같은 막대한 투자결정에 대해서는 반도체 업계 내부에서도 공급과잉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하지만 중국이 ‘반도체 굴기(堀起)’를 선언한 상황에서 기술격차를 유지하기 위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설비 및 연구·개발(R&D) 투자는 계속될 전망이다.

D램익스체인지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중국의 시도를 사전 차단하기 위해 기술 리더십을 공고히 하고자 한다고 소개했다. 중국의 칭화유니그룹(紫光集團·쯔광그룹)이 마이크론 인수 제안을 한 데 이어 글로벌 톱5 낸드플래시 기업 샌디스크를 우회 인수하는 등 공세적 행보를 보이는 데 대한 위기의식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D램익스체인지는 “(중국이 보인) 일련의 조치가 직접적이고 심각한 위협 수준은 아니지만, 시장 지배자인 한국의 반도체 제조업체들은 글로벌 시장의 진입 장벽을 높이려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 방대한 中 내수시장…“승리 장담키 어렵다” 견해도

20나노미터(nm) 이하 미세공정 신기술을 적용한 신제품은 비싸게 파는 대신, 20나노 이상 구제품은 헐값에 내놓는 ‘프로덕트 믹스’ 전략에는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후발주자 중국 반도체회사를 “더 크기 전에 미연에 견제해둬야 한다”는 한국 업체의 경계감이 숨어있다.

중국 반도체회사가 한국을 따라잡기 힘들 것이란 시각이 우세하나, 현재 극한 수준인 16~18나노 선까지 미세화가 진행돼 추가적인 미세공정 기술 진보는 당분간 힘들어졌다는 게 문제다. 반도체 미세공정은 나노미터의 수가 낮을수록 선진화된 생산방식이다.

그동안 한국의 메모리반도체 업체들은 미세화를 통해 생산단가를 크게 낮춰왔다. 셀 간 간격을 줄이는 미세화 작업의 수준이 높아질수록 한 장의 웨이퍼(반도체의 원재료인 실리콘 기판)에서 나오는 반도체 수가 많아진다.

기술혁신이 이뤄지지 않는 기간 중국 업체가 방대한 내수시장과 중국 정부의 ‘반도체 굴기’란 산업정책으로 인한 적극적 지원을 등에 업고 한국 업체의 수출시장을 잠식해 들어올 수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번 치킨게임의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나온다.

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관전 포인트는 중국이 한국의 점유율을 얼마나 빼앗아 오느냐 하는 점”이라며 “중국 정부가 내수시장에서 자국 업체를 밀어주면 세계 시장에서 수년 내 3위까지 치고 올라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8월25일 SK하이닉스는 단일건물 기준 세계 최대 반도체라인인 M14를 완공했다. 총 15조원이 투입돼 준공된 M14 공장은 축구장 7.5개 면적에 해당하는 5만3000㎡(1만6000평, 길이 333m·폭 160m·높이 77m)의 규모로 조성됐다. 월 최대 20만장의 300mm 웨이퍼를 가공해 반도체 칩을 생산할 수 있다.

향후 SK하이닉스는 M14 팹(반도체공장)의 웨이퍼 생산량을 1만5000장에서 7만장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SK하이닉스는 4분기 중 21나노미터 공정에 돌입하고 내년 중반쯤에는 전체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21나노미터 공정으로 소화한다는 계획이다.

삼성전자도 본격 가동된 경기도 화성사업장의 17라인 웨이퍼 생산량을 월 4만장에서 5만장으로 늘릴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화성 17라인의 1단계(PhaseⅠ) D램 라인은 올해 3분기 들어 초기 가동했으며, 2단계(PhaseⅡ) 라인도 연말까지는 가동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는 17라인에서 고부가 D램인 DDR4를 주력 생산한다는 방침이다.

업계 고위관계자는 “삼성전자는 어떤 제조사도 시도하지 못한 18nm 미세공정을 채용한 반도체 양산을 이르면 내년 초 개시할 것”이라며 “프로덕트 믹스를 하이엔드(고사양)로 개선하는 차원에서 PC 등에 들어가는 스탠더드 D램 생산 비중을 축소하고 모바일 D램 비율을 높이는 동시에, 수익성이 좋은 DDR4를 확장하는 데 역량을 결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일경 기자 ikpark@segye.com

<세계파이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