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의 탄생-이라크 내전
IS의 뿌리는 1999년 조직된 JTJ(유일신과 성전)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이들이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2004년 알카에다 이라크지부(AQI)로 개편되면서다. AQI는 이슬람 내 수니·시파아 간 갈등을 기반으로 서식했다. 이라크는 전체 인구 중 시아파가 다수(60%)지만 수니파(20%)가 건국 이래 계속 정권을 잡았다. 그러다 이라크 전쟁 후 시아파 정권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시아·수니파 간 갈등이 첨예해질 수밖에 없었다. 극단적 수니파 AQI에게는 기회였다. AQI는 2006년 ‘이라크 이슬람국가’(ISI)로 개명하며 존재감을 과시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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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조지 W 부시 정권이 2007년부터 미군 병력을 증강하면서 이라크 내 수니파 저항은 수그러들었다. 상당수 수니파 지도자들이 시아파 주도의 정부에 참여해 소수파로서 일정한 권리를 인정받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하면서 AQI는 침체를 맞았다. 이때 구원투수로 등장한 인물이 현 IS 최고지도자인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이다. 그는 2010년부터 ISI를 이끌며 후세인 시절 이라크 군에서 활동했다가 미군에 의해 축출된 수니파 장교들을 대거 영입해 조직기반을 다졌다.
◆IS의 급성장-시리아 내전
시리아 내전은 IS에게 새로운 도약의 기회가 됐다. 2011년 ‘아랍의 봄’과 함께 시리아에서 민주화 시위가 발생했다. 시리아의 알아사드 정권은 시위대에 독가스 샤린을 살포하는 등 2013년까지 20만명을 학살했다. 시리아 국민의 60%는 수니파였다. 반면 알아사드 정권은 시아파에 속했다. 당연히 학살된 시리아 국민들 가운데 수니파가 많았다. 점차 민주화보다 수니·시아파 간 갈등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기름을 부은 것은 외부 세력들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수니파 아랍국들은 수니파를 돕겠다며 시리아 반군에게 막대한 자금과 무기를 제공했다. 미국도 친러 성향의 사회주의 정권인 알아사드 정부를 퇴진시키기 위해 반군을 지원했다. 반면 이란은 같은 시아파 국가인 알아사드 정권을 후원했다. 러시아도 알아사드 정권을 도왔다. 이 와중에 시리아에선 1300개의 반군 조직들이 조직됐다. IS는 이라크에서 시리아 내전으로 눈을 돌렸다. 후세인 시절 이라크 정규군 출신들이 대거 참여한 IS는 시리아 정부군과의 전투에서 단연 두각을 나타냈다. 미국과 사우디 등이 반군 진영에 공급한 무기 가운데 적지 않은 양이 IS 수중으로 흘러갔다.
◆중동을 넘어 전 세계로 보폭 넓히는 IS
IS의 성장세는 무서웠다. IS는 2013년 3월 시리아 동북부 도시 락까를 점령했다. IS는 락까 지역의 유전에서 나온 원유를 밀수출하면서 막대한 자금을 벌었다. 시리아 내전으로 힘을 키운 IS는 다시 이라크 수니파를 자극해 이라크 내전도 격화시켰다. 지난해 6월 10일 이라크 제2도시 모술을 함락했고, 같은 달 29일 드디어 IS 탄생을 선포했다.
IS는 또한 그동안 어떤 이슬람 무장조직보다 확장성이 뛰어나다. IS는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자신들의 이념을 전파하고 새로운 대원들을 끌어들인다. IS는 SNS 전담 조직을 통한 개인화된 ‘1대1 맞춤식’ 접근으로 전 세계 100여개국에서 3만여명의 젊은이를 가담시켰다. 미국은 2011년부터 알바그다디에게 현상금 1000만달러를 내걸었지만 그의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김동진 기자 bluewins@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