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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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기억 속 정미소엔 오늘도 희망의 탈곡소리

KBS1 다큐공감
정미소는 산골마을의 가장 큰 공장이자 가난한 시절 풍요의 상징이었다. 1980년대 초까지 2만개가 넘던 정미소는 쌀값 폭락과 대형 자동화 미곡처리장에 밀려 점점 자취를 감추고 있다. ‘탕탕탕’ 신명나던 정미소 발동기 소리도 잊혀진 지 오래인 지금, 아직도 시골 농로를 돌면 모퉁이 제자리를 지키며 우직이 오랜 단골을 기다리는 나이 많은 정미소가 있다.

28일 오후 7시10분 KBS1 ‘다큐공감’에서는 녹슨 정미소에서 추억과 정을 나누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본다.

대형 자동화 미곡처리장이 시골 정미소를 대신한 지 오래지만 여전히 정미소를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KBS 제공
경북 봉화 봉양리마을에는 할아버지, 아버지가 일구던 정미소를 3대째 운영하고 있는 유영만(52)씨의 양진정미소가 있다. 다른 일은 해본 적도 없는 영만씨에게 정미소 일은 숙명이다. 영만씨의 어머니 안계분(82) 할머니의 마음은 다르다. 쌀값이 떨어지면서 통 재미를 보지 못할뿐더러, 정미소에서 금쪽같던 큰아들을 사고로 잃은 기억 탓에 정미소라면 지긋지긋하다.

강원도 속초 시내 한복판에는 속초 유일의 조양정미소가 자리 잡고 있다. 90년 된 조양정미소는 30여년 전부터 박영자(58)·김유식(64)씨 부부가 운영하고 있다. 한때는 정미소 기계가 한 달 반 넘도록 쉴 새 없이 벼 방아를 찧었지만, 속초 논밭이 아파트·빌딩 숲으로 변하면서 정미소 기계는 이제 근근이 돌아간다. 부부는 30년 전 강원도 사북탄광에서 모은 귀한 종자돈으로 정미소를 시작했다. 기술도, 경험도 부족해 손님은 없고 월세 12만원도 내지 못해 전전긍긍할 때가 잦았다. 꼬박꼬박 월급이 나오던 탄광 일을 박차고 나온 것을 매번 후회했었다는 영자씨. 하지만 이후, 10여년을 밤낮없이 일해 정미소를 사들였다. 그 덕에 어린 3남매를 건강히 키워내고, 먹을 걱정, 집 걱정을 덜었다. 세월이 흘러 정미소 기계는 멈춰 있는 날이 많지만, 여전히 부부에게는 기특하고 고마운 장소다.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