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 옹, 그릇 기’ 옹기(甕器)는 삼국시대부터 이어져온 한민족의 독특한 음식 저장용기다. 숨구멍이 있어 그야말로 살아 숨쉬는 그릇이라 할 수 있다.
“내가 처음 옹기 제작기술을 배울 땐 쩌기~ 바다 위에 옹기를 실어 나르는 목선이 수십 척씩 대기하고 있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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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중요무형문화재 96호 정윤석 옹기장이 전남 강진군 칠량군 봉황리 작업장에서 물가죽(도자기의 손잡이나 꼭지 등을 만들 때 쓰는 헝겊조각)을 이용해 옹기의 입을 만들고 있다. 정씨는 16세에 처음 옹기 일을 시작해 59년째 같은 일을 해오고 있다. 장인의 숨결이 느껴진다. |
전남 강진군 칠량면 봉황리 옹기 작업장 앞바다를 바라보며 국가중요무형문화재 96호 옹기장 정윤석(73)씨가 생각에 잠긴다. 까마득한 옛이야기를 듣는 듯하다. 이 지역 옹기가 유명했던 이유는 인근에 찰지고 철분 많은 흙이 풍부했고 편리한 뱃길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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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씨가 수동 물레를 이용해 전통 옹기를 제작하고 있다. |
지금은 정씨만이 아들과 함께 전통 옹기의 맥을 이어가고 있지만 한때는 마을 전체가 옹기 제작에 종사했을 정도로 번성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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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라 놓은 타래미를 쌓아올리며 옹기를 만드는 모습. |
떡가래처럼 만든 진흙을 돌려 쌓아 만드는 ‘개타래미 기법’이 일반적인 옹기 만드는 방법이라면 강진칠량 봉황옹기는 넓고 네모지게 만든 판 모양의 타래미(질판)를 발물레를 이용해 쌓아 올리는 ‘쳇바퀴 타래미 기법’을 사용한다. 이 기법을 이용하면 옹기를 쉽고 빠르게, 더 튼튼하게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손으로 빚고 천연유약을 발라 1250도 이상 고온의 가마에 구워 숨구멍이 트인 옹기로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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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균씨가 나무방망이로 옹기의 바닥을 내리치는 작업을 하고 있다. |
김치냉장고의 성능이 비약적으로 좋아져 예전에 비해 옹기를 찾는 이가 적지만 김치, 고추장, 된장, 간장 등 발효식품을 보관하기에는 여전히 그 효과가 남달라 꾸준히 발길이 이어진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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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씨의 큰아들 상균씨가 옹기 가마에 장작을 넣어 온도를 높이고 있다. 옹기가마 온도를 1250도가 넘게 유지해야 좋은 옹기를 만들 수 있다. 회사생활을 하던 상균씨는 1년 전부터 옹기 일을 배우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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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석 옹기장과 전수자인 두 아들 상균, 영균씨가 작업장 옹기가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들 부자는 전통방식으로 모든 옹기를 만든다. 정씨는 아들에 이어 손자들까지 가업을 잇기를 바라고 있다. |
“아따. 벌써 60년 세월이네” 옹기 제작에 평생을 바친 정씨가 옆자리에서 옹기를 만들고 있는 막내아들 영균(47)씨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본다. “군대 제대하고 계속 했응께 오래했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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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아들 영균씨가 작업장에서 전통방식으로 옹기를 빚고 있다. 군 제대 후 25년째 옹기 만드는 일을 하고 있는 영균씨는 자신의 자식도 가업을 잇기를 바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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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석 옹기장의 큰아들 상균(53)씨가 전남 강진군 칠량군 봉황리 작업장에서 옹기에 쓰일 흙을 살펴보고 있다. 작업장 인근에는 찰지고 철분이 많은 흙이 풍부하다. 강진옹기가 유명해진 이유 중 하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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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들인 상균씨가 전남 강진군 칠량군 봉황리 작업장에서 옹기에 천연유약을 바르고 있다. 회사생활을 하던 장남 상균씨는 1년 전부터 옹기를 배우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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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석 옹기장의 전수자인 막내 아들 영균씨가 전남 강진군 칠량군 봉황리 작업장에서 유약을 바르기 전 옹기를 살펴보고 있다. 옹기를 살펴보는 눈빛에서 자부심이 느껴진다. |
직장생활을 하던 큰아들 상균(52)씨도 지난해부터 옹기를 배우고 있어 정씨는 삼형제 중 두 아들과 하루종일 같이 생활한다. 뒤늦게 시작한 상균씨가 가마에 장작을 넣고 유약을 바르느라 분주하다. “상균아 장작 쪼깨 더 넣어라.” 정씨가 옹기 가마로 다가서며 소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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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씨가 작업장 마당에서 완성된 옹기를 살펴보고 있다. 이 지역에서 만들어진 옹기들은 수요가 많던 시절 배에 실려 제주도, 강원도를 비롯한 전국으로 팔려나갔다. |
“옹기는 그냥 그릇이 아니여. 어떤 주인을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지지. 늘 닦아주고 뚜껑도 열어보고 애정을 쏟아야 더 효과를 발휘하는 거여.”
강진칠량 봉황옹기는 대를 이어 숨을 쉰다.
강진=사진·글 이제원 기자 jwle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