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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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구·의원정수 초점… 黨利에 발목 잡힌 '선거구 획정'

여야, 이권 얽혀 피말리는 싸움 반복
2016년 총선을 앞둔 2015년 연말 정치권은 아슬아슬하다. 선거구 획정 작업은 7일 현재 여야의 주말 협상 결렬로 다시 멈춘 상태다. 2014년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에 따라 현 선거구 구역표는 오는 31일이면 사라지는데 여야의 획정 작업은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국회의원은 왜 4년마다 국회 로비를 농성장으로 만들까. 반복되는 피말리는 싸움을 잠재울 합리적 기준은 없는 걸까.


◆비극의 서막…헌재 결정과 선관위 개정 의견

지난해 10월30일, 헌재는 선거구별 인구편차를 3대 1로 허용한 선거법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인구가 적은 지역구에서 뽑힌 의원의 득표수보다 인구가 많은 지역구에서 낙선한 후보자의 득표수가 많을 수 있어 ‘표의 등가성’ 원칙에 어긋난다는 이유에서다. 헌재는 올해 연말까지 인구편차를 2대 1 이하로 조정토록 했다. 기존 선거구의 전면 재획정이 불가피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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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결정을 토대로 지난 2월25일 중앙선관위가 국회에 정치관계법 개정 의견을 냈다. 정부기관인 선관위가 대의민주주의 기관인 국회 구성 원칙을 논할 권한이 있는지에 대한 논란이 없지는 않았으나 큰 틀에서 비례대표 확대 방향을 제시해 주목을 끌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고 지역구 대 비례대표 의석을 2:1로 하는 게 좋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헌재 결정과 선관위 의견 제출로 내년 20대 총선 선거구 획정의 큰 틀이자 동시에 갈등의 불씨가 던져진 것이다.

◆비례·지역구 비율 규정 없는 대한민국

지역구 대 비례대표 의석의 비율을 2:1로 하는 게 좋겠다는 선관위 제안이 ‘폭탄’이 된 것은 지역구 의석 대폭 감소를 전제로 했기 때문이다. 현 300명인 의원 정수는 지역구 246명, 비례대표 54명으로 구성된다. 지역구 대 비례 비율을 2:1로 하면 200명 대 100명이 된다. 46명분이 날아가는 선택을 지역구 의원이 할 리 없다.

우리나라처럼 1인 2표 혼합제(지역구·비례)를 선택한 국가는 일반적으로 지역구와 비례 의석의 수나 비율에 관한 규정을 둔다. 각 나라별 사정에 따라 산출기준은 다양하다. 독일은 연방선거법에 지역구와 비례 의석을 각각 298석으로 규정했다. 일본은 총 의석 480석 중 지역구 300석과 비례의석 180석을 공직선거법에 명시했다. 법률로 수를 명시하는 방법이다. 필리핀은 헌법에 정당명부(비례) 선출 의원의 비율을 총 의석 수 대비 20%로 규정한다. 뉴질랜드는 인구 규모가 중간인 남섬의 지역구 의석을 16석으로 고정시킨 뒤 선거 시점에 선거구당 인구를 산출하고 이 기준을 다른 지역에 적용해 지역구 의석 수를 산출하는 독특한 방식을 사용한다. 총 의석 수의 나머지를 비례의석으로 하고 있다.

우리는 지역구 대 비례 의석 수에 대한 법률상 규정이 없다. 이는 4년마다 지역구 의석 확대 압력을 비례의석 축소로 해결하려는 부작용을 낳았다.

◆의원 정수 확대, 가야 할 길과 국민정서 간 괴리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지난 4월 비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통해 지역구 의원 46명을 줄이는 대신 전체 의석을 60석 늘려 240대 120을 만들자고 주장했다. 선관위 권고대로 2대1 비율을 맞추자는 아이디어를 낸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의원 정수는 60명 늘어난다. 대신 기존 국회의원 세비를 축소해 ‘고통분담’을 하자는 게 심 대표의 복안이었다.

이 제안은 대중의 공감을 얻지 못했다. 오히려 비난이 쇄도했다. 정치 혐오가 심한 대한민국에서 의원 정수 확대는 요원한 일이다. 한국일보와 한국정당학회가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지난해 12월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15.6%만이 의원 정수를 300명으로 유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반면 71.6%는 줄여야 한다고 답했다. 늘려야 한다는 의견은 10%에 불과했다.

현재 우리나라 의원 정수 300명(헌법상으로는 200명 이상만 충족시키면 됨)은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많지 않다. 총인구를 국회의원 수로 나눠 의원 한 명이 대표하는 국민 수를 따지면, 한국은 16만명당 의원 1명 꼴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은 9만명, 노르웨이는 2만명, 독일은 13만명당 1명이다. 양원제 국가는 평균 13만명당 의원 1명, 한국 같은 단원제 국가는 평균 5만명당 의원 1명 수준이다. 정치 환경이 각각 달라 일률 비교는 어렵지만 결론적으로 우리나라 의원 수는 많은 편이 아니다.

그럼에도 정치불신이 계속되는 한 의원 정수는 쉽게 늘어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여야는 오랜 줄다리기 끝에 지난 3일 회동에서 의원 정수는 300명으로 유지하되, 지역구를 7석 확대하고 비례대표를 축소하는 데 1차 공감대를 형성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염두에 두고 야당이 비례대표 축소에 합의해 준 것이지만 결국 정수 확대는 난공불락의 성이었던 셈이다.

홍주형 기자 jh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