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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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청·응팔' 과거를 불러서 오늘을 말하다

"그땐 그랬지~!" 중년들 TV 속으로
TV가 중년을 불러모으고 있다. 그들이 보낸 청춘의 아름다운 시절을 소환해 세상살이의 따뜻함을 떠올리게 한다. 그들만이 보여줄 수 있는 경험과 이야기는 때로는 민망하지만, 종종 미소를 짓게 만든다. tvN ‘응답하라 1988’(응팔)의 뜨거운 반응과 SBS의 ‘불타는 청춘’(불청)의 잔잔한 인기에는 중년이라는 키워드가 자리잡고 있다. 

tvN의 ‘응답하라 1988’은 지금의 중년들이 청춘을 보냈던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40대의 호응은 ‘응팔 신드롬’을 이끄는 한 축이다.
tvN 제공
# 40대가 이끈 응팔 신드롬


응팔은 지금 40, 50대의 청춘이 가장 발랄하던 1980년대 말을 이 시절을 TV 속에 재현했다. 그때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거기에 맞춰 춤을 춘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운동이 절정을 맞아가던 시절이고 대도시 서울에서도 이웃의 정이 생생하다. 시청자들 반응은 뜨겁다. 방송 5회 만에 시청률 10%대를 돌파했고, 화제성은 지상파의 다른 모든 프로그램을 찜쪄 먹을 수준이다. 지난 5일 방송된 10화 ‘MEMORY’의 평균 시청률은 13.9%로 케이블, 위성, IPTV 통합 동시간대 시청률 1위다. 

열광적인 반응의 중심에 40대가 있다. 응팔은 모든 연령대에서 인기를 얻고 있지만, 40대의 사랑이 굳건하다. 닐슨코리아의 시청률 조사를 분석해보면 40대에서 가장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TV와 별로 친하지 않은 이들은 6회까지 방송되는 동안 6~7%의 시청률을 형성하며 응팔의 열기를 이끌었다. 10대도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는데, 1회 2.1%에서 6회 5.3%로 올라 40대 남성의 뒤를 따르고 있다.

응팔에 대한 40대의 호응은 단순한 추억팔이 수준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웃과 기쁨과 슬픔을 나누고, 한 집에서 가족들과 복닥거리며 살던 그 시절이 가족 해체로 개인이 삶의 중심이 된 현실을 되돌아보게 한다. 가정, 사회 모두를 이끌어가는 자리에 선 중년에게 이런 메시지는 유독 절실하게 느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SBS의 화요일 예능프로그램 ‘불타는 청춘’는 40, 50대의 연예인들을 출연시켜 중년들의 로맨스와 애환을 이야기한다.
SBS 화면 캡쳐
#‘중년 맞춤형 예능’ 불타는 청춘


SBS의 화요일 예능 프로그램 불청은 멤버 구성이나 내용 등에서 꽤 독특한 면모를 갖고 있다. 메인 MC격인 김국진을 제외하면 다들 ‘왕년’의 스타이거나 자기 분야에서 주목도가 그리 높지 않은 40, 50대의 미혼남녀로 구성되어 있다. 강수지나 김완선이 그렇고 박세준, 박형준 등은 30, 40대에게서도 “누구지?” 하는 반응이 나올 법하다. 하지만 불청은 끊임없이 이런 연예인들을 멤버로 불러내 꾸준한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불청의 재미는 이들이 만들어가는 알콩달콩한 ‘썸’이 축이다. 가끔 억지스러운 면이 없지 않지만 중년의 싱글 남녀들이 만들어가는 밀당은 의외로 달콤하다. 특히 ‘치와와 커플’로 통하는 김국진과 강수지의 조합은 시청자의 큰 응원을 받고 있다. 출연진 사이에 오가는 ‘40금(禁)’ 농담 역시 불청의 전매특허다. “한 집에서 잤다”, “영화 ‘뽕’ ‘변강쇠’는 기본이었다”는 등의 이야기는 다른 프로그램에서라면 끈적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중년 특유의 거침없는 넉살과 어울리며 유쾌함을 선사한다. 

불청에는 중년이라 가능한 연륜, 애환도 녹아 있다. 불청의 출연진이 말하는 연애, 결혼, 가정, 일은 현실적이며 때로는 애틋하다. 결혼에 실패한 경험, 화려한 정상에 있었으나 이제는 한 켠으로 물러나야 하는 현실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지난 1일 방송에서는 강수지가 치매를 앓는 노모에게 “다음 세상에 태어나면 당신은 나의 딸로 나는 당신의 엄마로 태어나고 싶어요. 그래서 가까이서 오랫동안 엄마가 나한테 해줬던 것보다 더 많이 당신을 사랑해주고 싶어요”라며 애틋한 마음을 전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