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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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종교문화, 충돌 아닌 융합·대화의 시대 돼야”

정년퇴임 앞둔 동국대 김용표 교수
“인류 문명사의 조류는 모든 경계와 장벽을 넘어서는 다원주의시대로 나가고 있습니다. 미래의 종교문화는 ‘종교문명 간 충돌과 심판의 시대’가 아니라 ‘종교 간 지평융합과 대화의 시대’가 되어야 합니다.”

14일 오후 3시 동국대 다향관 세미나실에서 정년퇴임 회향강연회를 갖는 동국대 불교학부 김용표(65) 교수의 말이다. 김 교수는 대전고 재학 시절 ‘사유수(思惟修) 불교반’을 지도해주던 김대현 선생과 당시 대전 불교계 선지식이던 박희선, 이재복, 김백봉 거사 등의 법문을 듣고 발심해 동국대 불교학과에 입학했다. 이후 평생 구도와 학문, 남을 이롭게 하는 보현행원(普現行願)의 외길을 걸었다. 이제 그는 정들었던 강단을 떠나야 한다.

김용표 동국대 불교학과 교수는 “퇴임 후 미완의 학문적 과제를 지속적으로 탐구하며, 참선 수행과 시 창작에 전념하고 싶다”고 밝혔다.
“학문과 교육의 길에 은퇴란 적절치 않은 말 같습니다. 정년이란 그동안의 교육연구 활동을 정리하고 앞으로의 새로운 학문과 삶의 과제를 찾아내는 통과의례의 하나가 아닐까요.”

김 교수는 후학들로부터 존경받는 스승으로 반추되고 있다. 그는 동국대 불교학과를 졸업한 뒤 침례교 목사 러셀 콘웰이 세운 미국 동부 명문 템플대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모교 교수로 30년 가까이 재직했다. 유학 시절 성철 스님 문하로 출가했다가 환속한 드라마틱한 구도자 박성배 뉴욕주립대 교수를 만나 수행을 통한 학문완성의 길을 배웠다.

“박 교수는 불교학 완성을 위해 믿음과 수행, 깨우침을 하나로 보는 신행체계와 보현행원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학문을 보여주었습니다.”

김 교수 역시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휼륭한 스승이자 좋은 친구’인 선지식의 길을 걸었다. 제자들과 진리의 길을 함께 가는 ‘동붕동행(同朋同行)’의 길이었다. 평생 화두는 붓다 교설의 창조적 탐색과 수행으로서의 경전해석학이다. 그에게 모든 경전언어는 방편일 뿐이었다. 그는 붓다의 깨달음 체험과 자신의 해석학적 상황의 거리를 좁히며 원전을 살아 있는 법문으로 만들었고 학문과 수행의 지평융합을 추구했다.

“한국 불교의 기본 입장은 ‘다원주의를 향하여 열린 포괄주의’라고 봅니다. 포스트모던시대의 불교학은 새로운 해석학적 비전이 필요합니다.”

‘열린 포괄주의’란 불법(佛法)을 절대진리화하는 법집(法執)에서 벗어나 교리와 전통에서도 ‘테두리 없는 마음’에 바탕을 둔 종교인식이다. 그가 줄곧 탐구한 것은 ‘종교불학(Buddhology of Religions)’과 불교해석학이 현대불교학에 기여할 수 있는 분야였다. 종교불학이라는 용어는 그가 처음 제안한 불교학의 새 분과로, 불교의 새로운 해석학적 인식방법이다. 예컨대 불교와 세계 종교들 간 유기적 관련성과 대화를 중시하고, 종교에 대한 다원주의적 가치를 존중하며, 종교 간 상호교섭에 대한 역사적·사상적 연구와 종교의 보편적 본질을 탐색했던 것이다.

“한국불교는 서구사회에서 중국이나 일본 불교의 아류 정도로 알려져 있지요. 세계화를 위한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한국불교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원효 같은 대학자의 사상을 국제적으로 널리 알리는 한국불교 고전의 영역화 작업이 선행돼야 합니다.”

그가 영문학술지 ‘세계불교 사상문화저널(IJBTC)’을 25권째 발간한 이유다. 이 잡지는 200쪽 분량으로 연 2회 발간되며, 해외학자 논문 등 10여 편의 논문을 게재해 세계 각국의 중요 도서관과 학회에 발송하고 있다. 그는 또 제 19∼20대 한국불교학회장을 지내며 ‘불교와 세계종교와의 대화’ 세미나를 통해 인접학문과의 학제적 교류, 근현대 선지식에 대한 재조명 작업 등에 몰두했다. 현대 한국불교사상에 기여한 월정사 한암 스님과 탄허 스님, 선운사 박한영 스님, 고익진 교수 등이 연구대상이었다. 또한 BK21 세계화시대불교학교육연구단장을 역임하며 동국대 대학원 불교학과를 세계적인 불교학 연구 중심지로 도약시키기 위해 힘을 쏟았다. 이를 통해 대학원생 해외연수와 국제학회 발표 지원, 35억원가량의 연구비 수주 등 성과를 거뒀다. 매년 1000여 명의 동국대 불교학부와 대학원생들에게 장학금도 지급했다. 그는 대한불교조계종 종교평화위원회 공동위원장도 지냈으며, 그동안 저술한 단행본과 논문 등 60여 편 가운데 ‘경전으로 본 세계종교’(2000)는 학술원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됐다.

“칼 야스퍼스가 언급한 ‘축의 시대’(BC 800∼BC 200)에 인류의 위대한 스승들이 나타나 종족이기주의에 빠져 있던 인류에게 우주적 사랑과 참된 자아를 인식할 수 있는 지혜를 가르쳤지요. 작금의 종교는 오히려 종파의식에 사로잡혀 분열과 분쟁의 씨앗이 되고 있습니다.”

김 교수의 회향강연 주제는 ‘종교문명의 패러다임 전환과 미래 불교의 역할’로, ‘종교문명 간 충돌’과 ‘종교문명 간 지평융합’의 기로에 선 미래세계를 조명하는 자리다. 그는 강연에서 분열된 종교문명이 본래 스승의 가르침대로 환원되는 미래 ‘제2의 축의 시대’에 불교가 기여할 수 있는 교리와 전통을 논하고, 불교가 가진 진리탐구의 자유, 이웃 종교에 대한 관용, 열린 진리관, 폐쇄된 교리나 전통을 깨뜨릴 수 있는 공사상의 역동성 등으로 이상적인 종교 대화의 모델을 제시한다. 미래 종교문명의 새 장을 열 시대적 과제 등도 밝힐 예정이다.

정성수 문화전문기자 tols@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