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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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내 어머니…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나의 아들 나의 어머니’ / 70년 홀로 자식 키운 종부 노모… 칠순 아들과의 삶과 이별 그려

 

경북 안동 풍산의 500년 된 한옥에서 백발의 칠순 아들이 거동 불편한 구순의 노모와 함께 산다. 아들이 바라는 것은 단 한 가지다. 어머니와 함께 오래오래 사는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점점 쇠약해져만 간다.

예안 이씨 충효당파 16대 종부 권기선(1918∼2013)할머니는 열여덟에 열다섯살 남편과 혼인했다. 몇해 지나지 않아 남편은 핏덩이 같은 아들 하나를 남기고 훌쩍 세상을 뜨고 만다. 권 할머니는 70년 넘게 충효당을 지켜 왔다. 지금은 머리가 허연 아들의 보살핌을 받고 있지만 어머니의 눈에는 칠순 아들도 여전히 어린애나 마찬가지다. 노모는 자나깨나 아들 걱정이다. 아들 이준교씨는 서울 일간지 출신의 언론인이다. 은퇴 후 고향에 내려와 노모를 모시고 효자가문의 전통을 잇고 있다.

76년 동안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온 노부부의 진정한 사랑과 아름다운 이별을 그려내 역대 다큐멘터리 흥행 1위에 오른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제작진이 다시 모여 빚어낸 새 다큐 ‘나의 아들, 나의 어머니’ 속 주인공들 이야기다.

노모는 혼자서 백발을 뒤로 모아 비녀를 꽂을 만큼 정정하다. 아직은 건강한 이로 아들이 내놓는 음식을 즐긴다. 예쁜 양산을 든 노모는 아들이 밀어주는 휠체어에 앉아 마을을 구경하고 시장을 둘러본다. 장터 국수집에 들러선 콩국수도 한 그릇씩 해치운다. 국수가락을 불편한 젓가락 대신 손으로 처리하는 노모의 모습이 아이마냥 귀엽다. 노모는 카메라를 향해 지나간 세월을 술회한다. 70여년 전 이야기를 어제의 일처럼 막힘 없이 들려준다. 하지만 조금 전 일들을 기억하지 못한다. 몇 달만 지나면 어디에서 살았는지, 남편이 누구였는지조차 떠올리지 못할 것이다. 둘이 마주 앉아 오래된 사진들을 골라보면서 젊은 시절을 돌아보는 장면이 가슴을 친다.

카메라는 장엄한 기와집의 비오는 날 정취를 낭만적이면서도 여유롭게 담아낸다. 청개구리와 꽃뱀도 정겹다. 그러나 아들과 관객들이 두려워한 그날은 기어이 오고야 만다. 빈소에 차려진 노모의 영정과 염을 지켜보며 통곡하는 아들의 모습은 객석에 폭풍울음을 뿌린다. 평생을 살던 종가를 뒤로하고 하늘나라를 향해 꽃상여가 나간다. 영화의 여운은 관객을 한없이 ‘착하고 순한 사람들’로 만든다. 종반부 권 할머니의 육성으로 듣는 ‘여자소회가’가 구슬프다. 18세기부터 양반가 여인들 사이에 유행한 ‘내방가사’다. 권 할머니도 4m 길이의 두루마리에 세로로 꼼꼼히 내려적은 소회가를 남겼다. 17일 개봉.

김신성 기자